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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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제값’ 안 들이는 환경평가… 부실 자초 [심층기획-환경영향평가 2.0]

용역실태 분석해 보니

199개 사업 계약금 기준액 대비 54%
하청 낀 소규모 사업은 금액 더 낮아
불신 커지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 발생

개발을 추진하는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를 전문업체에 맡기면서 지불하는 돈이 정부 산정 기준액 대비 50%대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용역을 맡겨 환경영향평가 발주한 사례를 심층 분석한 결과다. 2012년 환경영향평가 대행비용 산정기준을 새로 만든 이후 실제 이 기준 적용 실태를 정량적으로 분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에서 환경영향평가 거짓·부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그간 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던 환경영향평가 ‘가격 후려치기’ 실태가 드러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업자들이 제값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우리 사회가 거짓·부실 의혹에 따른 지역사회 갈등·환경영향평가 제도 불신 등 막대한 비용을 대신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환경부 제공

9일 환경부 ‘환경영향평가 등 대행비용 산정기준 적용실태’ 자료에 따르면 사업 199건의 환경영향평가(사후환경조사 포함) 계약을 분석한 결과 대행비용 산정 기준액 대비 실제 계약금액이 54% 수준에 그쳤다. 분석 대상이 된 사업 199건은 평가 종류·발주처별로 분류돼 대표성을 지닐 수 있는 표본으로 선정된 것들이다.

분석대상 사업 10건 중 4건이 계약금액이 기준액 대비 40%가 채 되지 않는 모습이다. 기준액 대비 실제 계약금 비율을 구간별로 보면 20% 미만 구간에 해당하는 사업 비중이 12%, 20% 이상∼40% 미만 구간이 31%로 모두 43%를 차지했다.

발주기관별로 보면 지자체가 가장 인색했다. 지자체 발주사업의 기준액 대비 계약금 비율은 40%로 가장 낮았고, 이어 민간이 50%, 공공기관 66%, 국가기관 68% 순이었다.

 

환경영향평가 중에선 역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계약금이 기준액과 비교해 가장 낮았다.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의 기준액 대비 계약금 비율은 35%에 불과했고, 이어 일반 환경영향평가가 57%, 전략환경영향평가(계획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62%, 사후환경조사 66%로 집계됐다.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의 경우 1종 업체(대행업체)가 계약을 따낸 이후 2종 업체(재대행업체)와 재차 계약을 맺는 형태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실제 2종 업체가 받는 금액은 이번 분석 결과보다 훨씬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2종 업체 관계자는 “정부 지침에 재대행률(80%)이 명시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것보다 적게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그간 환경영향평가 거짓·부실 문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던 저가 수주 실태가 구체적으로 확인된 만큼 개선안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임성희 녹색연합 그린프로젝트팀 팀장은 “거짓·부실 논란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현재 치르고 있는 비용에 비하면 충실한 환경영향평가를 위해 지불하는 금액은 굉장히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 적정 비용 지급을 위해 10년여 전 만든 기준을 대체할 새 기준 마련을 추진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엔지니어링 표준품셈(사업대가 산정 기준) 관리기관으로 지정한 한국엔지니어링협회에 관련 용역을 맡긴 상태다. 환경부 관계자는 “계약 사안이라 이 기준을 강제할 순 없는 만큼 새 기준액의 일정 수준 이하로 계약된 건에 대해 환경영향평가 협의 과정 등에서 중점 관리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승환·이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