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유커 급증했지만 예전만큼 지갑 안 연다

제주, 추석연휴 1인당 하루 16만원 소비
MZ세대 늘어 면세점 편중 소비패턴 바뀐다

지난 8월 중국인들의 한국 단체관광이 허용됐지만 중국인 관광객이 예전보다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개별여행객이 늘면서 면세점에 편중했던 소비 패턴도 변화가 일고 있다.

 

11일 제주도의 BC카드 결제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추석 연휴(9월 28일부터 10월 3일까지) 6일간 제주를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1인당 하루 평균 소비 액수는 16만원 가량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16만9000원보다 줄었다. 물가 상승분을 감안하면 예전만큼 지갑을 열지 않은 셈이다.

 

화장품 전문 판매장 찾은 중국인 크루즈관광객.

제주도관광협회는 추석 연휴와 중국 국경절 연휴가 겹치면서 추석 연휴 기간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이 1만8000여명 찾은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주로 유니온페이로 결제하며, 유니온페이의 95%는 BC카드와 연동된다.

 

올해 추석 연휴 중국인 관광객의 업종별 소비 중 면세점 비중은 20.19%였다. 이어 대형마트 등 기타 대형 종합 소매업(17.75%), 호텔업(11.97%), 한식 음식점업(11.77%), 여관업(10.42%), 건강보조식품 소매업(6.84%) 순이다.

 

면세점 소비 비중은 지난해 30.88%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56.34%에 비해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인 관광객의 면세점 편중 소비패턴에 변화의 조짐이 생기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대명절인 중추절과 국경절 연휴가 이어져 면세점 업계에서는 이 시점을 기준으로 큰 폭의 매출 반등을 기대했지만 그에 못 미쳤다.

 

제주시 동문시장 찾은 중국인 관광객.

매출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던 보따리상(다이궁)은 줄었는데,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예상만큼 면세점을 찾지 않아서다.

 

크루즈 관광객의 경우도 면세점에서 명품이나 화장품보다는 저렴한 식품류를 찾고 있다고 업계는 전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크루즈관광객 등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하지만 매출 회복은 더뎌지고 있다. 면세점에서 물품을 가져다 팔던 보따리상의 빈자리가 여전히 큰데다 중국인 단체관광 모객도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면세업계는 이같은 분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소비 패턴이 바뀌면서 예전 같은 쇼핑관광을 기대하기 어려워서다. 

 

여행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세버스 요금 등 지상비가 크게 올라 수익을 쇼핑관광에 의존해야 하는데 녹록치 않아 단체 여행상품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크루즈관광객의 경우 체류시간이 5∼6시간으로 짧은데다 크루즈 내에서도 면세 쇼핑이 가능해 기항지에서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크루즈 관광을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끌기 위해서는 방문객들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체류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이를 위해 음식, 쇼핑, 즐길거리 등 다양한 기항지 맞춤형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출국 수속시간 단축도 요구된다.

 

전통시장에서 중국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가 되지 않은 점도 개선할 대목이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크루즈 등 단체관광객이 늘면서 활기를 되찾고 있지만 회복세는 더디다”라며 “중국인 단체관광 재개와 리오프닝 효과는 올해 말까지 기다려봐야 알 것 같다”고 설명했다.

 

◆MZ 세대 가성비 좋은 화장품·동네 맛집 찾아

 

이른바 K-팝과 K-드라마, K-푸드 등 K-컨텐츠가 외국의 젊은층에서 인기를 끌면서 중국 MZ(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제주 관광과 소비 흐름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과거에는 중산층 단체 관광인 ‘유커’와 면세점 대리 구매 보따리상인 ‘다이궁’, 큰손으로 불리는 외국인 카지노 관광객이 주를 이뤘지만 이제는 개별 관광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이들은 면세점보다는 저가 화장품 매장을 찾고, 음식점도 가성비 좋은 동네 맛집을 찾고 있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실제 제주시 노형동의 한 족발보쌈 전문점과 중국음식점은 20∼30대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게 앞에 줄 지어서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진다. 이 중국음식점은 짜장면 3000원, 탕수육 7000원으로 다른 음식점보다 절반 이하 가격에 판매한다.

 

추석인 지난달 29일 중국인 관광객들이 제주목관아를 찾아 사진을 찍으며 관광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시 원도심에 위치한 제주목 관아에는 최근 한복을 입은 중국인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관덕정 바로 옆에 자리 잡은 한복대여점도 덩달아 기지개를 펴고 있다.

 

제주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제주목 관아를 찾은 관람객 수는 5만1150명으로 지난해 2만8498명과 비교해 갑절 가까이 늘었다. 이중 외국인이 1만1012명으로 21%를 차지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최근 ‘중국 유커 유입과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응 전략 보고서’에서 중국인 관광객의 소비 변화로 소상공인들의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중국인 관광객의 소비 패턴은 M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체험 중심 여행으로 선호도가 바뀌고 모바일 페이를 통한 간편결제 중심 소비가 크게 늘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변화에 맞춰 중소·소상공인이 로컬 체험 중심의 관광상품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간편 결제 편의성을 높여 중국인들의 쇼핑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