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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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 기념사업 중단에 지자체 서로 다른 입장, 왜?

정부의 정율성 기념사업 중단과 시설 철거 권고에 대해 광주·전남지역 관련 지자체가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정율성 기념사업과 시설이 설치돼 있는 지자체는 광주시와 광주 남구, 전남 화순 3곳이다.

 

광주 동구 불로동과 남구 양림동에 있는 정율성 생가 2곳은 모두 기념 시설를 추진하고 있다. 호적상 본적지인 불로동 생가와 친인척 증언에 따른 양림동 생가를 두고 어느 곳이 진짜 생가인지 논란이 일자 광주시는 2010년 고증위원회를 통해 두 곳 모두 생가로 인정했다.

전남 화순군 능주면에 조성된 정율성 고향집의 모습. 연합뉴스

이념 논쟁의 시작점이기도 한 불로동 생가는 내부를 리모델링해 전시 공간을 조성하고 주변에 야외무대를 설치하는 등 역사공원으로 조성 중이다. 당초 이 집에 살던 주민을 위한 보상비 35억원과 공사비 13억원을 더해 48억원이 투입됐다. 늦어도 올해 말까지 공사를 마친다는 목표로 막바지 공사가 이뤄지던 중 이념 논쟁이 불거졌고 공사는 중단됐다. 

남구 양림동 생가는 바로 옆 한옥을 매입해 전시관을 만들기 위한 설계 용역 중이다. 정율성 유품을 전시하고 그의 업적을 소개하는 홍보판 등을 전시할 예정이었지만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국가보훈부는 11일 광주시 등에 '정율성 기념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이른 시일 내에 이미 설치된 기념시설도 철거할 것을 권고했다. 사진은 이날 광주 동구 불로동 정율성 역사공원 모습.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국가보훈부가 전날 정율성 기념사업을 중단하고 이미 설치된 흉상 등 기념시설 철거를 권고하자 광주시는 즉각 거부 의사를 보였다. 정율성 기념사업이 위법하지 않아 정부 주무부처가 시정명령을 내릴 수 없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광주 남구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 시정명령을 거부할 경우 국가 재정 지원에서 불이익을 우려해 뚜렷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화순에는 정율성이 학교에 다니며 거주했던 능주면 관동길에는 초가 모양의 전시관(고향집)이 조성돼 있다. 정율성이 지낸 1920년대 당시 일반적인 가옥의 형태를 재현한 것인데, 내부에는 음악가를 상징하는 축음기와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이불 책상 가마솥 등이 놓여있다.

국가보훈부는 11일 광주시와 전남 화순군 등에 '정율성 기념사업'을 중단하고 이미 설치된 기념시설을 철거하라고 권고했다. 사진은 이날 전남 화순군 능주초등학교 건물 벽면에 조성된 정율성 벽화의 모습. 연합뉴스

중국 명소화 사업의 하나로 문화체육관광부가 6억원을 지원하고 군비로 6억원을 보태 2019년 완공했다. 최근 이념 논란이 일자 화순군은 전시관 문을 닫고 그의 업적이 담긴 영상 콘텐츠 상영도 중단한 상태다. 정율성이 2년간 재학했던 것으로 알려진 능주초등학교에는 그의 흉상과 대형 초상화 등이 설치돼 있다. 학교 측은 논란이 일자 이 시설을 철거해 달라고 화순군에 요청했다. 하지만 화순군은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화순군은 정율성 생가 등이 이념을 고려해 세워진 게 아니라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마련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화순군 관계자는 “한류 영향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몰려오자 이런 유커들을 유치하기위해 정율성 관련 시설을 마련했다”며 “하지만 정부가 갑자기 이런 시설 철거를 명령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광주 남구는 정율성 이름을 딴 도로명을 변경하라는 행정안전부의 시정 권고에 대해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광주 남구 관계자는 이날 “기존 도로명을 중앙 정부의 권고로 변경한다는 것은 행정의 연속성에 맞지 않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도로명은 시민 정서, 사전에 형성된 공감대를 전제로 부여되는 것이다”며 “변경이 필요하다면 주민 의견을 충분히 들어본 뒤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