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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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고래화가’ 발달장애인 송종구 “고래 그림 그리며 세상과 소통해요”

수년 전 바다 관련 영상 시청 계기
실력 뛰어나 각종 대회 다수 수상
양말·이불 등 생활용품도 디자인
11월 6∼10일 울산서 개인전

울산에서 고래그림으로 전시회를 열고, 고래그림으로 양말·이불 같은 생활용품까지 디자인하는 30대 발달장애인이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자신을 ‘고래화가’라고 하는 송종구(31)씨다.

 

12일 찾은 울산시 남구 사회적기업 ‘우시산’ 사무실. 발달장애로 5~6살 정도의 생각과 행동을 하는 송씨가 허공에다가 고래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연필을 쥐고선 종이에 끊임없이 고래를 그렸다. 귀신고래와 향유고래가 바닷속을 유영하고, 바다 위로 뛰어오르고, 하늘을 나는 그림이었다.

송종구씨가 12일 울산 남구 우시산 사무실에서 고래그림을 들어보이고 있다.

송씨의 어머니 박정난(54)씨는 “아들이 나름대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 고래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송씨의 고래 사랑은 수년 전쯤 짧은 바다 관련 영상을 본 게 그 시작이라고 한다. 그러더니 수시로 컴퓨터 포털사이트에서 고래를 검색해 사진, 그림, 영상을 찾아보더란다. 송씨의 어머니는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그것만 파고든다”며 “어느 순간 저보다 고래 종류를 더 많이 알고 있더라”고 말했다.

 

송씨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잠들 때까지 하루종일 그림만 그리는 날이 많았다. 실력도 뛰어나다. 상을 여러 번 받았을 정도다. 2008년 전국장애인청소년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탔고, 2009년, 2010년에도 같은 대회에서 대상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동시에 받았다.

 

성인이 된 뒤에도 수상은 이어졌다. 2020년 한국장애인개발원의 발달장애 예술인 그림 공모전에서 대상, 2021년 하트-하트재단·스타벅스의 텀블러 이미지 공모전에서 대상을 탔다. 지난해 2월엔 울산시미술협회 회원이 됐다.

 

이런 그림실력 덕분에 그는 지난해 7월부터 우시산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이곳은 폐플라스틱과 버려진 옷을 새활용(업사이클링)한 상품을 만드는 곳이다. 송씨가 그린 고래그림과 멸종위기 바다생물 등은 이불과 양말 디자인으로 쓰였다.

 

송씨의 어머니는 “처음 아들이 그린 그림이 들어간 제품을 받았을 때 대견하고 뿌듯했다”며 “본인도 마음에 드는지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라”고 했다.

 

송씨는 다음 달 6일부터 10일까지 울산 중구문화의전당 1층 별빛마루에서 ‘꿈의여행’이라는 주제로 그동안 그린 멸종위기 바다생물 등 40여점을 모아 개인전을 연다.


울산=글·사진 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