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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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국가역량에 민간기술 접목 … 우주강국 향해 ‘터치다운’ [심층기획]

인류 최초로 달 남극 착륙한 인도

무인 탐사선 ‘찬드라얀 3호’ 임무 성공
美·中·러도 못한 영역서 ‘최초’ 타이틀
우주개발 투자 규모 서구 비해 낮지만
국영 기관 육성에 집중해 노하우 갖춰

우주산업에 모든 민간 기업 참여 개방
官 주도 아닌 새로운 기술생태계 조성
위성발사 분야 등 시장규모 지속 성장
스타트업 투자액 2년새 4배 이상 늘어
지난 8월 인도 무인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의 달 남극 착륙은 세계인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2300달러(약 308만원)로 여전히 개발도상국의 이미지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인도가 선진국들의 각축장인 달 탐사 영역에서 ‘최초’ 타이틀을 따냈기 때문이다.

 

7월14일 인도 사티시다완 우주센터에서 ‘마크-3’ 로켓에 실려 발사된 찬드라얀 3호는 8월23일 달 착륙선 ‘비크람’이 성공적으로 착륙하며 인류 최초로 달 남극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달의 남극은 얼음 상태의 물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며 우주 탐사의 전략적 요충지로 떠오르고 있는 장소다. 이로써 인도는 미국, 소련, 중국에 이어 사람이 만든 기기를 달에 올려놓은 네 번째 국가로 기록됐다. 특히 우주산업의 전통 강호 러시아가 비슷한 시기 발사한 ‘루나 26호’와 달 남극 도전 경쟁에서까지 승리하며 더 강렬한 이미지를 챙겼다.

지난 8월 23일(현지시각) 인도 벵갈루루의 인도우주연구소에서 기자들이 무인 우주선 '찬드라얀 3호'의 달 착륙선 '바크람'이 달 남극 부근에 착륙하는 생중계 화면을 사진 찍고 있다. AP뉴시스

임무가 시작된 지 약 2주 뒤인 지난 3일 비크람과 비크람에 탑재된 탐사차 ‘프라그얀’은 달의 혹한을 견디기 위해 절전모드로 전환된 뒤 끝내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예정됐던 14일간의 임무 계획을 달성한 것만으로도 찬드라얀 3호의 성과와 이를 만들어낸 인도 우주기술은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는 중이다.

◆ISRO 역량에 민간 기술 결합

인도는 1960년대 이후 꾸준히 우주기술 개발 역량을 쌓아오며 이 분야에서만큼은 10대 강국 중 하나로 분류돼 왔다. 다만 어디까지나 서구 선진국을 위협하는 ‘다크호스’ 이미지가 강했다. 우주개발 투자 규모도 서구에 비교가 안 된다. 2022년 기준 인도의 우주산업 예산 규모는 19억3000만달러로, 세계 최대 우주산업 투자국인 미국의 32분의 1, 2위 투자국 중국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일본, 프랑스, 독일 등에 비해서도 예산 규모가 절반에 그치는 상황이다.

이런 인도가 더 많은 우주개발 투자를 해왔던 국가들을 따라잡은 것은 국영 우주기관인 인도우주연구기구(ISRO)에 역량을 집중한 전략이 결정적이었다. 1969년 기존 우주연구위원회를 대체하는 정부 산하 기관으로 출범한 ISRO는 수십년간 꾸준한 발전을 거듭해 미국, 러시아, 유럽, 중국, 일본의 우주개발기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주기구로 성장했다. 창설 이후 올해 9월까지 우주 임무 수행 성과가 125건에 달할 정도의 기술력뿐 아니라 경험까지 축적했다. 찬드라얀 3호의 달착륙 역시 ISRO가 축적한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성과다.

인도가 찬드라얀 3호를 통해 우주기술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을 넘어선 것은 ISRO의 능력에 민간기술이 조합됐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인도는 꾸준한 우주 분야 투자를 통해 산업 생태계가 갖춰지며 주요 부품과 인력을 자국에서 조달할 수 있게 된 상태다. 이를 통해 찬드라얀 3호에는 전자 부품부터 우주 발사체 통신 및 항법에 사용되는 장치까지 수백개의 민간 기업 기술이 적용됐다. 민간과 협력을 통해 ISRO는 기존 능력을 배가시켜 마침내 인류의 우주개발 역사에 자국의 이름을 새기는 데 성공했고, 인도 민간 우주산업도 더 큰 프로젝트에 도전할 수 있는 커다란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인도의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가 지난 7월14일 인도 안드라프라데시주 스리하리코타 사티시 다완 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인도우주연구기구

◆민간에 우주 개발 자율성 부여

인도에서는 최근 수년간 우주산업에 도전하는 민간 기업이 다수 생겨나는 중이다. 2020년 6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우주산업에 모든 종류의 민간 기업의 참여를 개방하겠다고 발표한 뒤 인도 정부는 우주산업에서 민간 기업 참여에 대한 여론 수렴과 함께 기존의 관(官)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의 새로운 기술 생태계 만들기에 착수했다. 이런 변화를 감지한 젊은 인재들이 속속 창업에 뛰어들면서 2019년 7개, 2020년 11개에 불과했던 우주산업 분야 스타트업 기업 창업 수가 2021년 47개, 2022년 104개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전체 스타트업 투자액도 크게 늘어나 2020년 2300만달러에서 2022년 1억852만달러로 4배 이상 증가했다.

인도 정부는 아예 자국 우주산업의 기본 틀 자체를 바꾸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 4월 발표한 ‘인도 우주정책’이 그것이다. 이 정책에서 인도는 우선 ISRO의 업무 범위를 첨단기술 연구개발로 한정해 민간 부문이 인도 우주 프로그램의 개발과 경쟁력 강화 등에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ISRO는 첨단 우주기술의 연구 및 개발, 우주 탐사 및 기타 비상업적 임무와 같은 측면에 집중하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면서 민간업체들이 우주 물체, 지상 기반 자산 및 통신, 원격 감지 및 내비게이션과 같은 관련 서비스의 구축 및 운영 등의 분야에서 자체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기존에 ISRO가 이끌고 민간업체가 보조하던 체제 대신 아예 민간에 자율성을 부여하겠다는 뜻이다.

달에 착륙한 비크람 착륙선의 모습. AP뉴시스

스리달라 파니크 소마나트 ISRO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ISRO는 우주 부문의 운영 및 생산 작업을 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 새로운 시스템 및 연구개발에 에너지를 집중할 것”이라면서 “이는 본질적으로 지금까지 ISRO가 담당했던 일상적인 생산 및 발사를 민간 부문에서 완전히 처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인도 정부는 우주개발 분야에서 민간 기업의 참여 확대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 및 혁신을 수혈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예산을 책정하고 주어진 기간 내 과업을 마무리하는 등 관이 아닌 민간만이 가능한 효율성의 확보 또한 기대 중이다. 지텐드라 싱 인도 과학기술부 장관은 “새로운 정책으로 인해 산업계는 용기를 얻고 더 많은 참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회 열린 인도 우주산업

정보기술(IT) 강국이기도 한 인도는 소규모 위성 발사 등 민간 기업들이 자체 역량을 키울 만한 사업 기회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2020년 96억달러 규모였던 인도의 우주산업 관련 시장은 2025년에는 129억달러로 35%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중 위성발사 분야는 2020년 5억7000만달러에서 10억5000만달러로 두배 가까이, 위성제조 분야는 21억달러에서 32억달러로 52%나 성장이 예상됐다. 위성서비스는 38억달러에서 46억달러로 21% 성장을 기대 중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막대한 정부 예산을 투자한 대규모 사업 대신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기술을 통해 소규모의 상업적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으로 우주 비즈니스가 변화하고 있다”면서 인도가 변화하는 트렌드에 제대로 적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관에서 민(民)으로 우주기술의 중심축이 이동하며 더 많은 인재가 이 분야로 몰릴 것으로도 기대된다. 인도 정부는 민간 중심 우주산업으로의 전환을 통해 국가고시 시스템으로만 뽑는 ISRO 과학자 외에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 뛰어난 인재들이 우주 분야에 참여하는 통로가 마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세계적 주목을 받은 찬드라얀 3호의 성공을 통해 인도는 국제적인 우주 임무에서 입지까지 대폭 강화됐다. 인도는 일본과 협력해 후속탐사선 찬드라얀 4호로 달의 남쪽 극지점에 더 가까운 ‘영구 음영 지역’ 탐사를 추진 중이며, 향후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포함한 국제적인 우주 임무에서도 훨씬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스콧 허버드 미국 스탠퍼드대 우주항공 교수는 네이처지에 “미지의 달 남극에 탐사선을 안전하게 착륙시킨 것은 뛰어난 과학적·공학적 성과”라면서 “찬드라얀 3호의 성공적인 착륙으로 인도는 매우 독점적인 클럽에 합류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8월 23일(현지시각) 인도 구와하티의 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무인 우주선 '찬드라얀 3호'의 달 착륙선 '바크람'이 달 남극 부근 착륙에 성공한 것을 축하하고 있다. AP뉴시스

이런 민간 주도로의 전환을 통해 인도 우주산업은 국제무대에서 지금까지보다 한층 더 빠른 성장을 기대 중이다. 인도 고위 관리는 인도 기술전문지 데브디스코스에 “현재 세계 우주 경제에서 인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2% 정도에 불과하지만 2033년까지 전 세계 점유율의 약 8%를 차지하며 시장규모가 440억달러에 달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