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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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華 제국이 쇠퇴할 때 요리는 번성했다

중국 명말청초에 ‘4대 요리’로 정착
개인인 ‘화인’이 전 세계로 전파시켜
정부가 퍼뜨린 프랑스 요리와 달라
韓선 1880년대 한양에 요리점 생겨
짜장면 등 각국서 국민 음식 되기도

중국요리의 세계사/이와마 가즈히로/최연희·정이찬 옮김/따비/4만8000원

 

1842년, 중국은 영국과 아편전쟁을 벌인 뒤 체결한 난징조약을 맺으면서 근대 국민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상하이에 차례로 조계를 개설하면서 이곳 조계를 중심으로 중국 각 지방의 요리점이 속속 등장했다. 중국요리는 고대부터 남과 북의 두 계통이 존재했고, 당송 시대에는 각 지방에서 서로 다른 요리가 경쟁적으로 발전하다가 명말 청초에 만주(북방), 강남, 쓰촨, 광둥(및 푸젠) 요리라는 4대 요리로 정착됐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중국요리들은 19세기 이후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 각국으로 확산했고, 특히 1930년대 중일전쟁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1949년을 전후해 타이완, 홍콩, 동남아, 한국, 일본, 미국 등 세계로 급격히 확산했다. 상하이 요리는 1990년대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중국 전역으로 확산하기도 했다.

중국요리가 어떻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세계 각국의 식문화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책이 나왔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짜장면, 하이난 치킨라이스, 촙수이, 커리락사, 퍼보, 불도장,오세치, 로라 등 세계 각국에서 국민 요리가 된 중국요리들. 출판사 제공

중국요리가 근대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과정은 프랑스를 비롯한 주요국의 요리 확산 과정과는 궤를 달리했다. 즉, 중국요리는 중화 제국이 쇠퇴하고 위기를 맞던 19~20세기에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고, 정부나 기업이 중심이 아닌 개개인 중국인 ‘화인’들에 의해서 이뤄졌다. 이와 달리, 세계에서 영향력이 큰 프랑스 요리의 경우 18~19세기 프랑스 정부의 주도로 주요한 외교의 장에서 의식적으로 퍼져나갔다.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문학부 교수인 저자 이와마 가즈히로는 책에서 오늘날 중국요리가 형성되고 퍼져나간 과정과 중국요리가 각국의 국민 요리가 된 과정을 면밀히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각 국가와 사람들이 중국요리에 담고자 했던 생각과 역사를 읽어내려고 시도한다.

책에 따르면, 중국요리는 외국 요리의 범주를 넘어서 세계 각국이나 지역에서 국민 음식이 된 경우가 많았다. 베트남의 퍼, 싱가포르의 뇨냐 요리, 태국의 팟타이, 한국의 짜장과 짬뽕, 일본의 라멘, 미국의 촙수이와 포춘쿠키, 호주의 커리락사…. 중국요리는 다양한 국가와 문화에서 현지 사정에 따라서 몇 가지 단계 또는 유형으로 현지화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와마 가즈히로/최연희·정이찬 옮김/따비/4만8000원

한국의 경우 1880년대부터 청나라 상인(화인)들에 의해 한양을 중심으로 중국요리점이 생겨났다. 화인 유입이 늘어나면서 ‘아서원’, ‘사해루’, ‘금곡원’, ‘중화루’, ‘공화춘’ 등 고급 중국요리점도 속속 문을 열었다.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에 거주하던 화인이 10만명에 달하면서 경성과 인천에서는 대형 중국요리점이 번성했다. 이들 중국요리점은 일본 요정에 비해 민족 운동가들이 반식민지 활동을 하는 거점이 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1919년 1월 기독청년회 학생부 간사 박희도를 중심으로 경성시내 전문학교 학생대표 8명이 만세운동에 참가를 결의한 곳은 경성의 중국요리점 ‘대관원’이었고, 그해 4월 13도 대표 23명이 모여서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선포문과 국민대회 취지서 등을 낭독한 곳 역시 경성의 ‘봉춘관’이었다.

한국에서 성장을 이어오던 중국요리업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외국인특별토지법’을 비롯한 규제를 받으며 타격을 받은 뒤 상당수 화인이 타이완이나 일본, 미국 등지로 떠났다. 이 틈을 비집고 중국요리점 경영자가 대거 한국인으로 교체됐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중국요리들은 한국화가 급격히 진전됐다. 짜장면이 검어지고, 짬뽕은 더욱 매워졌으며, 탕수육 역시 기름기가 줄었다. 짜장면을 재해석한 ‘짜파게티’나 ‘짜짜로니’ 같은 인스턴트 식품도 널리 퍼져갔다.

중국요리는 어떻게 이렇게나 큰 세계적 영향력을 지닐 수 있었을까. 저자는 중국요리가 다른 나라 요리보다 현지 식재료에 대응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중국계 이민자가 많고 역사가 길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요리는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현지화 과정을 거치면서 각국의 국민음식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잡채의 경우 중국요리의 영향 아래 일본의 식문화까지 더해지면서 새롭게 재탄생한 한국의 대표 요리가 됐다.

책은 격변하는 근현대사 속에서 중국인들과 중국요리가 각국의 정치, 경제, 문화와 얽힌 궤적을 방대하게 추적하는 한편, 음식에 관한 거짓된 전승인 ‘음식의 페이크로어(culinary fakelore)’를 경계한다. 즉, 중국요리에 얽힌 기원과 설을 세밀하게 검증하려 시도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