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에서 남편을 살해한 주부 A씨가 이례적으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양형부당’을 주장하면서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며 기각했다.
부산고법 울산제1형사부(부장판사 손철우)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항소심에서 검찰의 기소를 기각하고, 1심의 형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15일 밝혔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은 A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배심원 7명은 A씨 범행에 모두 유죄를 평결했고, 집행유예 선고형에도 만장일치 의견을 냈다. 검찰은 A씨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사건의 시작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의 남편 B씨는 경제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았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이 잦았다. 2017년쯤 남편이 건축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했고, 경제적인 어려움마저 처하게 됐다. A씨 가족은 시어머니 집에 들어가 살게 됐다. 이들 부부는 아들 2명, 딸 1명을 뒀다.
남편의 강압적 태도와 폭력적 행동은 계속됐다. 그러던 중 지난해 5월 A씨는 경남지역 한 병원에서 수면제 7알을 처방받았다. 술에 취해 남편이 폭력적으로 변하면 커피 등에 섞어 마시게 할 목적이었다. 같은 해 7월 A씨는 또 수면제 14알을 추가로 처방받아 가루로 만들어 방 안 서랍에 보관했다.
사건은 같은 달 중순 새벽에 일어났다. 술에 취한 남편이 잠이 든 A씨를 깨웠다. 그러곤 거실로 나가 부부관계를 시도했다. 하지만 건강상 문제로 제대로 관계가 이뤄지지 않자 B씨는 점점 가학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했다. 거친 부부관계를 시도하면서 화를 냈다. A씨에게 길이 32cm짜리 흉기를 부엌으로 가서 가져오라고도 했다. 신체 일부에 상처를 내보자는 의도였다고 판결문 등에 나온다.
두려움에 떨던 A씨는 가져온 흉기를 이불 밑 아래에 숨기며 “제발 이러지 말자, 이러면 안 된다” 라고 B씨에게 애원했다. 실랑이 끝에 B씨가 화장실에 간 틈을 이용, A씨는 준비해 둔 수면제 가루를 B씨가 마시던 커피에 넣었다. B씨는 술과 수면제가 든 커피를 함께 마셨고, 폭력적인 행동을 계속하다가 결국 잠이 들었다.
A씨는 수사기관에 “남편이 없으면 모든 사람이 편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진술했다. 남편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흉기로 잠이 든 남편 손목을 여러 차례 그었다. 이어 베개로 얼굴 부위를 눌러 살해했다. B씨의 사인은 질식사였다. A씨는 남편이 사망하자, 범행을 시인하면서 자수했다.
재판부는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어떤 경우에도 보호해야 할 가치지만, 지속해서 가정폭력을 당해온 점, B씨가 없어져야만 자신과 자녀를 보호할 수 있다는 극단적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 점 등 참작할만한 사정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A씨를 다시 구금하면 자녀들이 부모의 부재 속에서 성장해야 하고, B씨 유족들도 탄원서를 제출했다”며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의 의견이 법원을 기속하는 효력을 갖진 않지만 제도 취지를 감안하면 배심원의 의견은 최대한 존중되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