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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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소 vs 강행…핼러윈 행사 ‘원조’ 영어유치원들의 선택은? [미드나잇 이슈]

2000년대 초반 핼러윈 행사 도입한 영유들
이태원 참사 추모 분위기에 행사 진행 고민
“문화 배우는 행사” vs “자제해야” 의견 갈려
#1.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K 영어유치원은 매년 치르던 핼러윈 행사를 올해는 열지 않기로 했다. 이 학원 원장은 “아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지난해 참사가 아직 많은 사람에게 아픔으로 남아있다”면서 “웃으며 재미있게 보내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해 올해는 조용히 지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2. 경기도 고양시 P 영어학원 유치부는 최근 학부모들에게 핼러윈 행사를 진행하니 사탕 두 봉지를 보내달라는 안내문을 보냈다. 그러면서 ‘올해는 코스튬(의상)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이 학원 본사 관계자는 “핼러윈 행사를 예전처럼 진행할지, 축소할지, 취소할지는 각 지점 재량에 맡기고 있다. 아이들 행사이기 때문에 하지 말자는 방침은 정하지 않았다”며 “다만 사회적 추모 분위기가 있으니 화려하게 진행하는 것은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핼러윈 데이(10월 31일)가 다가오고 있다. 매년 이맘때면 코스튬 파티를 즐기려는 젊은이들과 특수를 노린 유통업계 이벤트로 떠들썩한 분위기였지만, 올해는 이태원 참사 1주기로 조용한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영어유치원(영유)들은 고민에 빠졌다. 영유에서 핼러윈 데이는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연중 가장 큰 행사이기 때문이다. 켈트족 축제에서 기원해 미국의 문화로 자리 잡은 핼러윈은 원래 아이들이 귀신 복장을 하고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trick or treat’(사탕 안주면 장난칠 거야)을 외치는 놀이 성격이 강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 영어유치원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으며,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반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도 코스튬을 입고 사탕을 나눠 먹는 행사를 도입했다.

 

그러나 올해는 많은 영유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아이들 행사라고는 하나 전국적인 추모 분위기 속에 지탄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면서도 명색이 영어유치원인데 아이들에게 미국 문화를 알려주는 정도는 괜찮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다.

 

18일 영어유치원 교육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지역 맘카페 분위기를 보면 각 영유의 고민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추모 분위기에 따라 아예 취소한 곳도 많았지만, 예전처럼 진행하는 영유도 상당수 있었다. P 학원처럼 축소해서 치르는 경우도 있었고 코스튬 행사는 진행하되 이름을 ‘핼러윈 데이’가 아닌 ‘코스튬 데이’로 바꾼 곳도 눈에 띄었다. 핼러윈 행사 진행 여부를 묻는 학부모 조사를 진행하는 영유도 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의견도 갈렸다.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회사원 A씨는 “최근 생활용품점에서 핼러윈 용품을 봤는데 지난해 충격이 떠올라 소름이 돋더라”면서 “원래는 재미있는 문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희생자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든다. 핼러윈 행사는 어디에서든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밝혔다.

 

자녀 유치원에서 핼러윈 행사 안내 문자를 받은 학부모 B씨는 “선생님께 문의하니 영유에서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라 그냥 진행한다더라“면서 “아이들은 좋아하겠지만 찜찜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강한 반대 의견을 내놓는 부모도 있었다. 아이를 일반유치원에 보내는 한 학부모는 “영유도 아닌데 핼러윈 행사를 한다”며 “그 난리를 보고도 유치원에서 이런 행사를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 아이를 결석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태원 참사 때문에 아이들 행사가 영향받지는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학부모는 영유 커뮤니티에 “아이들에게는 1년에 한 번뿐인 날인데 그 일로 인해 행사를 못 해야 하느냐”며 “유치원 졸업하면 이런 큰 행사도 없을 텐데 안 하면 속상할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른 학부모는 “영유는 영어 외에도 영미권의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어 의미 있는 것”이라며 “(핼러윈 행사를) 원치 않는 분들은 그날 등원을 안 시키면 된다”고 말했다. 

 

영어 교육 관계자 커뮤니티에서도 “그 나라 문화를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축소하더라도 하는 게 맞다” “핼러윈의 유래를 알려주고 게임을 진행할 생각이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다만 “어머니들 건의에 노래 부르기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분위기상 자제하는 게 맞다” ”올해는 안 하지만 차츰 다시 하게 될 것 같다” 등 분위기를 따른다는 의견도 다수였다.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추모 메시지가 붙어있다. 뉴스1

지난해 핼러윈을 앞둔 주말이던 10월 29일 서울 이태원 골목에 파티 분위기를 즐기려는 인파가 대거 몰리면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159명이 사망한 참사였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태원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는 지난 16일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축제에 나선 사람들은 죄가 없다. 축제는 삶의 한 부분이고 이를 부정하는 것은 삶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안전을 도외시하는 이들을 용납하지 않고, 안전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사회로 나가도록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