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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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처참히 무너진 세상… ‘이태원 참사’ 우리 모두의 기록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김초롱/아몬드/1만8000원

 

“2022년 10월 29일, 나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다. 참사 직후의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는 지금도 설명하기 어렵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겠고 어안이 벙벙한 느낌, 현실감각이 소멸된 채 아득하던 기억만 남아 있다. 가슴이 답답해 미칠 듯했던 것만은 또렷하다. 그 심경을 있는 그대로 적어 내려갔다.”

지난해 10월 29일 토요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턴 호텔 서편 좁은 골목.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이자 최대 규모의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159명이 숨졌고, 300여명이 다쳤다. 그날 그곳에서 많은 것을 몸으로 겪고 목격한 저자는 이태원 참사 생존자다. 그날 이후, 저자의 세상은 뒤집히고 무너졌다. 그는 당시 상황과 목격한 것들, 생존자로서 상담을 받으며 겪은 심리 변화를 다룬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했다. “이태원에서 보고 느낀 것뿐 아니라 처참히 무너진” 자신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토해내듯 썼다. 글은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리며 누적 조회 수 50만 회를 훌쩍 넘기는 등 화제가 됐다. 그 글은 어느 일간지와 온라인 뉴스 매체에 정식 연재로 이어져 더 많은 사람에게 읽혔다. 그 글의 제목이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다.

김초롱/아몬드/1만8000원

책은 저자가 연재 내용을 기반으로 새로 쓴 글이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세상을 향해 내는 목소리다. 참사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이 본 것들, 사회적 참사를 맞닥뜨린 한 개인에게 찾아온 트라우마의 형태와 그것을 극복하려 애쓴 흔적들이 담겨 있다.

“녹사평역에서 세계음식문화거리로 향하는 길은 정말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는데, 그 광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들이 열심히 준비해서 꾸민 코스튬도 사랑스러웠고, 웃음소리는 듣는 사람도 덩달아 미소 짓게 했다.”

책은 사회적 참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증언한다. 또 참사 이후 이어진 ‘놀러 가서 죽은 것’이라는 비난의 목소리, ‘근본 없는 귀신 축제’라는 낙인찍기 등 2차 가해를 온몸으로 목격하며 개인의 고통에 사회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인간성을 잃지 않는 사회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성질을 부리고 짜증을 내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귀가 따가워서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 순간 갑자기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그 1초 만에 전후 상황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등이 아팠다. 그러다 곧 앞쪽에서도 압력이 가해졌다. 앞뒤로 세게 압박이 가해지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은 지금, 책은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배우 문소리는 “이 기록은 이태원 참사의 핵심에 관한 기록이며 또 그 참사를 겪은 우리 모두의, 집단의 기록이다”라며 읽어보길 권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