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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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3차 세계대전’

약 110년 전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던 발칸반도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세르비아의 19세 청년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는 남부 슬라브족의 해방을 위해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암살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세르비아를 침공하면서 독일·이탈리아 등 동맹국과 러시아·프랑스·영국 등 협상국 간 교전으로 비화했다. 민족주의 충돌과 테러가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던 셈이다. 전쟁의 불길은 유럽을 넘어 중동·아프리카 등으로 퍼지며 사상자가 19개국 3252만여명에 달했다.

역사는 새로운 형태로 반복된다고 했던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 지 18개월이나 흘렀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불붙고 있다. 일본의 역사학자 오바라 준 와세다대 교수는 “최근 20∼30년 사이 미국의 패권 축소, 유럽의 블록화, 중국·러시아의 부상으로 복수의 세력이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점에서 현 국제정세는 1차 전쟁과 닮았다”고 했다. 미국 외교가의 대부 헨리 키신저도 지난 5월 “우리는 1차 대전 직전과 비슷한 상황에 있다”며 “3차 대전이 5∼6년 안에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동정세가 긴박하다. 하마스와 연대하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우린 이미 전쟁의 중심에 있다”고 선언했다. 헤즈볼라의 뒷배인 이란은 전쟁 개입을 시사하며 최정예 혁명수비대 병력을 이스라엘 영토 가까이에 배치했다. 미국도 뒤질세라 2척의 핵 항공모함도 모자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배치하고, 군 파병 카드도 만지작거린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지원을 위해 740억달러의 예산을 국회에 요청하며 두 개의 전쟁에 대비 중이다. 미·이란 간 대리전이 발발한다면 5차 중동전쟁을 넘어 파국적인 국제전쟁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공포가 가실 줄 모른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3차 대전이 어떤 무기로 치러질지 모른다. 그러나 4차 대전은 아마 몽둥이와 돌로 싸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3차 대전 때 핵전쟁이 발발, 문명의 종말이 닥칠 것이라는 예언이다. 인류가 1, 2차 대전을 겪은 후 20세기 중반부터 키워온 집단지성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주춘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