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국제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 2023’(ADEX·아덱스)가 열린 첫날인 지난 21일, 이곳을 방문한 여러 시민은 길을 찾기 어렵고 너무 혼잡해 관람을 포기하고 되돌아갔다. 22일은 전날보다 체감할 수 있는 혼잡도가 덜했으나 이날도 통행 방향 구분이나 안내판 게시가 미흡해 혼란스러워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개장 직후부터 관람객이 밀려든 행사장은 오후까지도 긴 인파가 계속됐다. 전날 오후 1시쯤 아이, 남편과 같이 아덱스 행사장을 찾았던 김모(31)씨는 “행사장 앞까지 갔다가 너무 붐벼서 출입구 근처도 못 가고 돌아왔다”며 “입장권을 사전예약한 3만원을 버렸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길가에 전부 주차돼 있어서 겨우 차를 대고 처음에 1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안전요원이 ‘2∼3시간은 기다려야 해 못 들어갈 수도 있다’길래 포기하고 돌아갔다”며 “우리처럼 줄만 섰다가 못 들어간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덱스를 주최한 한국항공우주산업협회가 파악한 전날 방문객은 7만명이다. 항공우주산업협회 관계자는 “전날 관람객을 끊어서 입장시키거나 입구로 오는 경로를 분산하는 등의 조치가 없었다”며 “전날 밤 대책회의를 통해 이날은 입장객을 끊어 들어가게 하고 특정 구역에 인파가 몰리지 않도록 협회 전 직원을 행사장 주변에 투입해 출입 구역이 분산되도록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블랙이글스(공군특수비행팀) 공연이 끝난 뒤 퇴장하는 관람객이 몰려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안전을 최우선으로 신경 썼다”며 “이날은 셔틀버스 운행 횟수도 늘리고 현장판매를 중단, 재난문자 전송 등을 통해 방문객은 10만명으로 전날보다 많게 추정되나 혼잡은 덜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여전히 관람객이 오가는 통로를 들어가는 방향과 나가는 방향으로 구분하지 않았고 행사장으로 가는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안내판이나 이를 물을 안내요원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행사장 입장 방향이 어디고 현 지점에서 얼마나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시민들은 앞선 사람이 가는 방향으로만 따라가야 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시민은 “안내문이라도 붙여 두지”라고 불평했고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 할아버지는 멀리서 안전요원을 불러 “손녀가 화장실이 급하다는데 길 좀 뚫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장을 방문한 강모(35)씨는 “입구까지 긴 거리를 수많은 인파와 움직이다 보니 앞사람과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다”며 “일부는 양옆 샛길로 지나가다가 다른 시민과 시비가 붙기도 했는데 전반적으로 통제 인원이 부족한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오후 들어 행사장에 들어오려는 인원은 오전보다 줄었지만 행사장에 들어오는 사람과 빠져나가는 사람 사이에 방향 구분이 이뤄지지 않았다. 입구와 출구를 구분하던 펜스는 출입구를 수백m 벗어난 뒤부터 사라졌다. 입장객이 적어 서로 뒤엉키지는 않았으나 셔틀버스 타는 길을 찾거나 자차 혹은 택시를 타려 도로로 나가려는 시민 일부가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도로에서 차량 통행을 막는 안전요원은 쉽게 발견할 수 있었으나 사람이 다니는 통로에서는 길을 물을 안전요원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올해 1학기까지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A(17)군은 “일본은 혼잡을 막기 위해 행사장 수백m 전부터 줄을 치거나 8열 횡대로 줄을 세우는 등 세심한 관리를 한다”며 “이번 행사에는 입구 주변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통제하는 사람도 없고 통행 관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안전사고가 날까 봐 걱정했다”고 말했다.
김연수 동국대 융합보안학과 교수는 “인파 사고 발생 시 제일 큰 문제는 사람 수 자체보다도 인파의 흐름이 정체되는 병목 지점 발생”이라며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인 행사장 내부에서는 충돌할 위험이 적더라도 출입구 주변은 한정된 통로라 방향성을 잃는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출입구를 분리할 뿐 아니라 각 방향 동선을 명확히 안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처음 와 보는 공간일수록 이런 안내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대형 행사일수록 입장 통로에 (경품 추첨 행사장 등) 소규모 행사를 만드는 등 순차적으로 입장시키는 방법을 짜는데, 주최자가 명확했지만 행사 첫날부터 인원을 분산하고 안전요원을 눈에 잘 보이게 촘촘히 배치하는 전략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부실 대응이 사고 더 키워… ‘예고된 人災’ 반복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이후에도 대한민국에선 대형 사고가 잇따랐다. 해마다 위력을 더하는 자연재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미흡한 대비·부실한 대응이 반복되며 ‘인재’(人災)가 거듭되고 있다는 지적이 22일 나온다.
이태원 참사 불과 2개월 후인 지난해 12월29일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는 도로를 지나던 폐기물 집게 트럭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후 불이 쉽게 붙는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 소재가 사용된 방음터널로 번지며 화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당시 단전으로 안양 방향 입구에 있는 터널 진입 차단시설이 작동하지 않아 운전자들이 계속 터널 안으로 진입한 것도 피해를 키운 원인이었다. 이 사고로 사망 5명 등 모두 6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고 직후 ‘예고된’ 화재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2020년 8월 경기 광교신도시 인근 하동IC 고가도로 방음터널 화재 사고로 PMMA의 화재 취약성이 드러났음에도 우리 사회는 경고를 무시했다.
올해 여름에는 전국에서 집중 호우로 인한 피해가 컸다. 역대급 폭우가 쏟아진 것이 사고의 1차 원인이었지만, 이를 대비하지 못하고 부실하게 대응한 지자체 등 일선 기관의 책임이 명확했다.
지난 7월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제2지하차도가 침수돼 사망 14명을 포함해 2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하차도 인근의 미호강에는 사고 당일 오전 4시10분 홍수경보가 내려졌고 오전 6시30분에는 이미 경보 수준보다 높은 ‘심각 수위’까지 도달했지만, 행정 당국은 교통을 통제하지 않았다. 쏟아지는 비에 제방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며 강물이 지하차도를 덮쳤고, 결국 참변이 일어났다.
경북에서는 같은 날 호우와 산사태 등으로 26명이 사망했다. 당시 경북도는 호우가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고, 이미 곳곳에서 사망·실종 피해가 발생한 뒤인 7월15일 오후 9시에야 도내 모든 지역에 대피 명령을 내려 거센 비판을 받았다.
조성일 르네방재정책연구원장(전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은 “정부와 지자체가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책을 발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전에 발생한 재난을 모니터링하고 대비해야 다가올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