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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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무슨 결혼이냐”… 편견에 내몰린 ‘사랑의 사각지대’ [심층기획]

이성교제 포기하는 장애인들

남성·여성이기 앞서 ‘장애인’ 시선
신체적 장벽 넘고 결혼 결심해도
“2세 양육 부담” 가족 반대 부딪혀

자폐성 장애인 미혼율 100% 집계
임신 후 장애아 출산 우려도 난관
“국가가 생애주기별 대책 마련해야”

배외수 장애인재활협 경북협회장

형편 어려운 장애인 부부에 무료 예식
27년간 228쌍 수혜… 신혼여행도 지원
김모(28)씨는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예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보청기를 끼고 다른 사람의 입 모양을 바라보면 어눌한 발음이지만 대화가 가능하다. 먹고사는 데도 누구보다 열심이다. 평일에는 대구의 카페에서 3년째 바리스타로 일하고, 주말에는 자전거를 타는 재미에 푹 빠졌다. 김씨가 요즘 가장 관심을 두는 건 뭘까. 그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매만지며 “연애”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에게 연애는 취업보다 어렵다고 했다. 그는 “요즘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고 하지만 장애인에게는 먼 이야기 같다”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은 연애와 결혼을 하고 싶어도 현실에 가로막혀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말끝을 흐렸다.

지체·뇌병변·시각·청각·자폐…. 장애인은 신체는 물론 사회적 편견까지 뛰어넘어야 한다. 이 중에서도 연애와 결혼, 출산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지만 김씨처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적다. 주위의 부정적 시선과 가족 반대, 경제적 문제 등에 부닥쳐 ‘내 처지에’ 하며 일찌감치 교제를 포기하는 장애인이 늘고 있다.

 

◆자폐 장애인 미혼율 100% 달해

23일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장애통계연보’를 살펴보면 2020년 기준 장애를 가진 성인 남녀의 48.7%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다. 2017년 장애인 44.7%가 결혼을 하지 않는 점과 비교하면 꾸준히 증가세다. 장애 가운데도 자폐의 미혼율은 100%로 집계됐다.

장애인이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결혼 시기가 되지 않아(24.6%)’가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음(18.2%)’이 많았다. 다시 말해 교제를 하고 싶어도 이성을 만날 기회가 적다는 이야기다.

뇌전증을 앓는 이모(23)씨의 이성 교제 경험은 ‘0회’다. “몸이 조금 불편한 것뿐이고 비장애인과 다를 게 없지만 장애인은 차별과 차가운 시선으로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어렵다”고 했다.

◆결혼해도 난관…산후조리원 이용률 8.1%

장애인은 결혼을 결심해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장애인끼리의 결혼은 더 그렇다. 지체장애 4급 박모(30대)씨는 5년 전 장애인직업교육시설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해 딸을 두고 있지만, 결혼을 결심할 당시 주변 사람들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박씨는 “결혼 준비 사실을 알리는데 시어머니가 ‘둘 다 장애인인데 어떻게 살 거냐’며 결혼을 뜯어말렸다”면서 “친정 역시 축하보다는 걱정에 가까운 잔소리를 해 축하받지 못한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부모 역시 장애 자녀가 결혼을 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그 누구보다 바라지만, 결혼은 현실인지라 찬성하기도 축복할 수도 없다는 데 입을 모은다. 자폐를 가진 아들을 둔 이모(50대)씨는 “결혼은 독립을 의미하지만 정신이나 자폐, 발달장애인끼리의 결혼은 가족들 입장에서 보면 돌봐야 할 대상이 한 사람 더 늘어나는 셈”이라며 “2세 출산까지 이어지면 유전이란 현실적인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 2세 양육은 가족 몫이 돼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장애인의 삶 패널조사’를 살펴보면 장애인이 임신 기간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장애아 출산에 대한 두려움(34.4%)’이 가장 높았고, 다음이 ‘가사의 어려움(29%)’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차별 경험을 묻는 설문에서도 ‘결혼’이라고 응답한 장애인은 100명 중 17.7명으로 집계됐다. 취업(21.5명)보다는 낮았지만, 직장생활에서의 소득 차별(13.6명)과 의료기관 이용(3.7명)보다 응답률이 더 높았다.

장애인은 산후조리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보건복지부의 ‘산후조리 실태 조사’에 따르면 비장애인의 산후조리원 이용률은 2021년 기준 81%다. 반면 장애인의 산후조리원 이용률은 8.1%에 불과했다.

◆“생애주기별 국가책임제 앞당겨야”

결혼으로 겪는 장애인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임신·출산·육아·부부관계 갈등은 잇따르고 있지만 대책은 미비하다. ‘2020 장애인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99만원이다. 전국 월평균 가구소득(411만원)의 48.4%에 불과했다. 장애인 가구 규모별 소득은 1인 가구 91만7000원, 2인 가구 166만7000원, 3인 가구 268만2000원, 4인 가구 366만8000원 등으로 집계됐다.

장애인 가구는 수입이 적다 보니 지출 역시 적을 수밖에 없다. 이들의 월평균 지출은 178만5000원으로 나타났다. 전국 월평균 가구 지출(245만7000원)의 72.6% 수준에 불과했다.

여성 장애인은 가장 필요한 정책 과제로 자녀 양육을 꼽았다. 만 49세 이하 여성 장애인들이 필요 서비스 1순위로 꼽은 정책은 ‘자녀 양육지원(13.3%)’으로 확인됐다. 뒤를 이어 ‘활동지원사(11.3%)’와 ‘출산 비용 지원(10.2%)’, ‘건강관리 프로그램(10%)’, ‘임신·출산 교육과 정보 제공(8.8%)’ 등이다.

여성 장애인은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돌봄과 육아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 것인데 정작 장애인을 위한 지원책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장애인의 생애주기별 국가책임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장애인이 결혼과 출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선택권 확보를 위한 충분한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보다 짜임새 있는 돌봄 체계 현실화와 가족관계, 인간관계 개선을 위한 심리지원 등 보다 촘촘한 장애인 복지체계를 갖춰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서승엽 대구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사회복지실장은 “장애 유형별 맞춤 지원책 마련은 물론 교육·노동·교육·주거 등의 문제를 장애인 가족이 아닌 국가가 살펴야 한다”면서 “장애인의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이 마련되도록 관계 기관은 입법·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배외수 장애인재활협 경북협회장 “농아인 부부 ‘고맙습니다’ 문자에 눈물… 보람 느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결혼식을 돕고 있죠.”

 

지난 19일 오전 경북 안동시 두리원웨딩홀. 배외수 한국장애인재활협회 경북협회장은 장애인 부부들의 ‘합동결혼식’을 챙기느라 분주했다. 곧이어 결혼식장에 나타난 신랑·신부는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고 해맑게 웃었다.

배외수 한국장애인재활협회 경북협회장

“평생 웨딩드레스를 입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의성에서 왔다는 신부는 고마움의 표시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 여성의 남편은 “결혼식 사진 한 장이 없는 게 늘 미안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아내에게 큰 선물을 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화촉을 밝힌 장애인 부부는 모두 4쌍이다. 이들은 배우자를 만났지만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거나 혼인신고 후 형편상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경북협회는 형편이 어려운 장애인 부부에게 무료로 예식을 치러주고 있다. 1996년부터 결혼식을 올린 부부만 228쌍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3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배씨가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두게 된 건 7살 터울의 형 때문이라고 했다. 수십 년 전 형이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면서다. 가족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형은 목숨은 건졌지만 팔과 다리가 마비된 데다 산소 공급을 위해 목에 구멍을 뚫은 탓에 목소리를 잃게 됐다. 대학에서 심리와 교육을 전공한 배씨는 그때부터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상담사로 일하며 수많은 장애인을 만나 고충을 듣고 상처를 보듬었다. 구미 경운대 상담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배씨는 순수 봉사로 장애인 합동결혼식을 돕고 있다.

 

‘기억에 남는 부부가 있냐’는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년 전 결혼식을 올린 농아인 부부”라고 답했다. “결혼식이 끝난 뒤 부부가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라고요. 돌아보니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켠 뒤 자판을 꾹꾹 누르더라고요. ‘감사합니다’라고…. 얼마나 보람찼는지 몰라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경북협회는 합동결혼식을 마친 장애인 부부의 ‘신혼여행’도 지원한다. 이번 4쌍의 부부는 결혼식 뒤 3박4일 일정으로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몸이 불편하거나 의사소통이 힘든 장애인 부부를 위해 협회 직원은 이들의 공항 수속을 돕고 휠체어를 밀어줬다. 신혼여행 일정 내내 부부의 손과 발이 되어 이들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했다.

 

배씨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장애인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면서 “형편이 어렵다면 언제든 꼭 연락해 달라. 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안동=배소영 기자 sos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