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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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차별에 운동 열외… 장애학생에 운동장은 '그림의 떡' [심층기획-체육교육 살리자]

<하> 소외된 여성·장애 청소년

혼자 뛸 수 있음에도 외면당하기 일쑤
체육서 소외 땐 커서도 운동과 멀어져
10대 장애인 주 2회 운동 비율 18%뿐
프로그램 적고 보조인력 지원도 드물어

체육통합은 비장애 학생에 긍정 영향
해외선 체력 강화·인성 발달에 초점
국내 장애인 체육은 선수 육성 몰입
“인식 안 바뀌면 큰 사회적 비용 들어”

뇌병변으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A(25)씨는 학창시절 체육수업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A씨는 조금 느리고 불완전한 자세이긴 하지만 혼자 힘으로 걷고 뛸 수도 있다. 하지만 체육수업에선 ‘열외’일 때가 많았다. A씨는 “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저쪽으로 가 있으라고 하면 교실에 앉아있을 땐 드러나지 않던 내 장애가 두드러지는 것 같아 야속했다”며 “배려라기보다는 차별로 받아들여졌다”고 회상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 내내 체육 시간이 제일 싫었던 A씨지만, 5학년 때만큼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당시 담임 교사가 “같이 해보자”며 A씨를 운동장으로 이끌어서다. A씨와 반 친구들은 다 같이 한 발로 서서 공 던지기를 하기도 하고, A씨만 달리는 거리를 3분의 1 정도로 줄여 계주를 함께 하기도 했다. A씨는 “처음엔 친구들 앞에서 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익숙해지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체육 시간에 느낀 성취감은 A씨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친구들이 A씨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A씨는 “계주에서 내가 들어오니까 같은 팀 친구들이 달려와 환호했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며 “6학년 때는 선생님에게 먼저 ‘저도 해볼게요’라고 하면서 체육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선생님들은 악의가 있다기보다는 장애 학생과 어떻게 체육수업을 해야 할지 잘 몰랐던 것 같다"며 “학교는 장애 학생이 처음으로 만나는 사회인데 학생들이 소외감을 배우지 않도록 정부가 신경 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애 학생에게 학교 체육수업은 먼 존재다. 정부는 장애인 운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관련 정책은 대부분 성인기 또는 선수 위주의 엘리트 체육 중심이다.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체육수업 활성화 방안에서도 장애 학생 문제는 빠져있다. 어릴 적 운동 경험이 일생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학교에서부터 장애 학생의 체육수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어릴때부터 운동과 멀어지는 장애인

 

24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장애인 중 생활체육 완전실행자(최근 1년간 재활치료 외 목적으로 1회 30분·주 2회 이상 집 밖에서 운동하는 사람) 비율은 18.1%로 연령대 중 가장 낮았다. 60대(28.1%)와는 10%포인트나 차이가 벌어졌다. 완전실행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까지 합친 운동하는 사람 비율도 44.1%로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낮았고, ‘운동하지 않고 운동 의지가 없는 자’ 비율(35.1%)은 가장 높았다. 전반적으로 운동량이 부족하고, 운동에 대한 의지도 적은 것이다. 

 

청소년의 운동 의지에는 학교에서의 체육 경험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학교에서부터 운동에 소외될 경우 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운동을 낯설게 느낄 수 있어서다. 목발을 짚고 학창시절을 보냈던 30대 지체장애인 B씨는 학교에서 체육수업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늘 체육수업에 빠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운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B씨는 성인이 된 뒤 우연히 휠체어 탁구를 접하고서야 ‘운동으로 숨 차고 땀이 나는’ 경험을 처음 했다. B씨는 그 느낌을 ‘충격적’이라고 표현했다. 지금은 상체 근력 운동이나 휠체어 농구 등도 즐기며 운동에 보다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B씨는 “장애인이야말로 운동이 필요한데 그 전에는 잘 몰랐다. 그저 무리하지 말고 앉아있는 게 좋은 건 줄 알았다”며 “학창시절부터 운동하고 몸 쓰는 법을 배웠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B씨의 학창시절부터 수십 년이 흘렀지만, 학교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장애 학생의 체육수업 참여를 높이기 위해 비장애학생과 함께 할 수 있는 체육수업의 예시를 담은 ‘통합체육수업매뉴얼’을 만들었으나 현장에서는 많이 쓰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장애 학생은 여전히 체육수업에서 열외인 처지다.

 

신체활동이 가능한 발달장애 학생도 마찬가지다. 초등학생 발달장애 자녀가 있는 유모(44)씨는 “아이가 뛰거나 공을 차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으나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고 선생님도 다른 학생들을 살펴야 해 체육수업 참여는 거의 못한다”며 “좀 더 적극적으로 같이 할 수 있게 해주는 선생님도 있지만, 그렇게 안 해주는 분도 바쁘셔서 탓하기 어렵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체육 교사로 오래 근무했다는 이민표 학교체육진흥회 사무처장은 “학급에 장애 학생이 있어도 체육 교사 입장에선 다수인 비장애 학생을 중심으로 수업할 수밖에 없다. 비장애 학생 수업하기에도 벅차다 보니 장애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어렵다”며 “효과적인 수업을 위해선 장애 학생을 위한 지도 프로그램, 특수교육을 아는 강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학교가 대부분이다. 결국 예산과 인력 문제”라고 말했다.

 

정예현 서울장애인부모연대 교육국장은 “요즘은 생존수영이 필수 교과목으로 자리 잡았는데 장애 학생은 옷 갈아입고 씻기 어려워서 학부모들이 수업 참여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가 교육받을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라며 “의지가 있는 학교는 체육수업 등에 보조 인력을 지원해주지만 이런 곳이 드물고 교육청이나 학교별로 예산 등이 달라 상황 편차가 크다. 학교에서 장애 학생의 체육수업을 좀 더 지원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비장애학생에게도 좋은 통합체육수업

 

정부는 올해 4월 학교 체육을 활성화하겠다는 ‘체육 활성화 대책’을 내놨지만, 여기에도 장애 학생에 대한 내용은 없다. 한국의 장애인 체육 지원은 주로 선수를 기르는 엘리트 체육 중심이다. 

 

전문가들은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함께 하는 체육 통합수업은 비장애 학생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통합체육을 하면 비장애 학생이 손해가 아니고, 오히려 다양한 신체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장애 학생과 함께 하는 법을 배우면서 열린 사고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해외 많은 나라는 체육수업의 목적을 신체능력 강화와 더불어 인성 발달로 보고 있어 장애 학생과의 체육수업을 중시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초·중등학교 교과 교육과정 국제 비교 연구’(권점례·2018)에 따르면 프랑스는 체육 교육에 ‘학급 내에서 특별한 교육적 필요가 있는 학생들 또는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포함하는 것을 보장한다’며 평등성을 강조한다. 일본도 체육 교수 방법에서 장애 학생에 대한 지도, 도덕 교과와의 연계를 중요하게 본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2011년부터 체육 교사와 특수교사를 대상으로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함께 할 수 있는 통합체육 프로그램에 대한 연수를 진행하고 있으나 전체교사에 비하면 적은 수여서 정부 차원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서울 지역의 한 특수교사는 “현재 학교는 장애인은 운동과 먼 존재라는 인식을 가르치는 꼴”이라며 “이는 훗날 큰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 장애 학생 운동이야말로 공교육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유나·이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