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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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화마 상처 잊고… 편히 쉬소서 [밀착취재]

파주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전국 손상된 건축문화재 목부재·석재·기와 한자리
선조들 지혜 배우고 계승하는 ‘전통 건축 寶庫’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전시실에 2008년 화재 피해를 입은 숭례문의 잔존부재를 재사용해 상층 문루 일부를 재현했다. 완성된 재현물과 더불어 숭례문의 복원 과정을 상세히 들여다보고, 건축 문화유산에 대한 안전 및 재난 예방의 중요성을 일깨울 수 있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의 거대한 수장고에 들어서니 화재 현장인 듯 메케한 그을음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이곳은 2008년 2월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숭례문 방화 사건에서 피해를 입은 문화재의 ‘요양 병원’ 역할을 하고 있다.

방화범에 의해 국보 숭례문이 화염에 휩싸여 시뻘겋게 타오르다 검은 잔해만 남기고 붕괴했을 때 온 국민의 마음도 무너졌다. 다행히 2012년 숭례문이 복원됐어도 충격은 국민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당시 화재로 타다 남거나 그을음이 뒤덮이는 등 화상을 입은 부재(部材·구조물의 뼈대를 이루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 여러 가지 재료)는 3000여점에 이른다. 이 ‘화상 환자들’이 현재 센터에 ‘입원’해 있다.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전시실에 2008년 화재 피해를 입은 숭례문의 잔존부재를 재사용해 상층 문루 일부를 재현했다.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전시실에 전시 중인 숭례문 취두(鷲頭). 독수리 머리를 의미하나 형태는 용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지붕 용마루 양쪽 끝단에 얹어놓은 장식 기와다. 궁궐 등 격식이 높은 건물에만 사용된다.

센터는 문화재청 산하 전통건축수리기술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전통건축 부재와 재료의 체계적 수집·보존 및 조사·연구한다.

국보 숭례문 화재로 피해 부재 역시 국보라는 여론이 형성됐고, 복구와 복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라 문화재관리체계의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2017년 전통건축수리기술재단이 설립됐다. 설립 직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부재보관소, 충남 부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건조물부재보관소, 대전 유성구 국립문화재연구원에 나뉘어 보관되던 숭례문 화재 수습부재를 센터 수장고로 모았다. 이관 후에는 건식세척과 훈증살균 등의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숭례문 부재는 형태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거나 작은 파편도 빠트리지 않았다.

전국 각 지역 문화재 수리현장에서에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 교체된 전통건축 부재 중 특이성이 있는 것도 선별하여 보관하고 있다. 커다란 목부재, 석재, 기와까지 다양하다.

수장고에서 직원들이 불에 탄 숭례문 고주를 살펴보고 있다. 숭례문 고주는 모두 4개로 상하층 통주로 되어있으며, 길이는 약 8.5m다. 2008년 화재 시 4개의 상부가 모두 탄화되어 탄화된 부분은 잘라내고, 탄화되지 않은 하부는 2012년 복구공사 시 재사용했다.
부재조사팀 직원들이 이관받은 동구릉 숭릉 정자각 대량 부재를 조사하고 있다. 연구조사를 거쳐 발전된 기술의 보수·보강을 마치면 전통건축 부재의 다음 교체 시에 재사용할 수도 있다.
수장고에 충북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의 부재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법주사 창건 시기는 대략 8세기 말쯤으로 알려지며, 대웅보전은 1618년 재건하여 여러 차례 중수(重修·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침)되어 현재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보관 중인 부재들은 2001년 12월~2005년 12월 건물 전면을 해체하여 부식재를 교체한 부재들이다.
방화로 불에 탄 창경궁 근정전 창호 부재.

전통건축은 선조들의 깊은 지혜가 담긴 산물이다. 역사·사회적·과학·예술적 가치를 망라한 문화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전통건축 부재에는 재료의 사용에서부터 구조와 형태, 기법과 기술 등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숭례문은 원래 조선 태조 때인 1396~1398년에 걸쳐 건립된 후 세종 때인 1447년 한 차례 개축된 것 외에는 알려진 바 없다. 1961~1963년 있었던 해체·수리 시에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새로 짓거나 고친 집의 내력, 공역 일시 등을 적어둔 문서)을 통해 성종 때인 1479년에도 비교적 큰 규모의 수리가 있었음이 새롭게 밝혀졌다.

수장고에 보관 중인 숭례문의 종도리(宗道里) 상량문. 해체 수리(1961~1963년) 당시 숭례문 상층 어칸 종도리 하면에서 세종 30년(1448) 상량문이 발견됐다.
정현민 부재분석팀 팀장대리가 분석실에서 목재의 나이테 너비와 패턴으로 연륜연대분석을 하고 있다.
보존처리실에서 부재분석팀 신재혁 연구원이 건식 세척을 마친 부재를 알코올로 세밀하게 닦아내는 처리를 하고 있다.

센터에 보관 중인 부재는 분류체계를 만들어 기본정보와 이력정보를 정리하여 통계를 내고, 전자태그(RFID 인프라) 기반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 관리한다. 훼손된 이유와 연대 측정, 보수·보강을 위한 기법 등을 분석·연구한다.

부재를 이용해 전시 콘텐츠로 활용하고 학생이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기도 한다. 문화재 원형보존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화재 현장에서 수습한 잔존 부재를 재사용해 숭례문 2층 문루(門樓) 일부를 재현했다.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전시실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전시실에 2008년 당시 숭례문 화재 피해 응원메시지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외부에 2022년 복원된 아재당(我在堂). 아재당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사랑채와 집무실로 알려져 있다. 아재당 재건공사에 사용된 건축부재는 2002년 6월 부암동 129-29번지의 본채, 부속채, 사주문 3동을 해체하여 2018년 이곳으로 옮겨 왔다. 2002년 해체 시 발견된 상량문에는 ‘대원군이 건축한 운형궁의 아재당을 개축하였던 것을 다시 이 자리에 이축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전통건축 부재는 오랜 시간 크고 작은 수리를 겪으며 새겨 온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다. 우리 선조의 지혜와 전통을 지닌 문화유산이다.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힘쓰는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의 역할을 기대한다.


파주=글·사진 남정탁 기자 jungtak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