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커피 생두 생산국이 됐다. 전남 고흥의 한 커피 농장이 대기업에 판매한 생두가 가공돼 최근 인천공항 내 커피전문점의 메뉴에 ‘한국커피’로 올랐다. ‘브루드 커피’ 한 잔이 7000원, 볶은 원두 100g짜리 한 봉이 1만5000원에 각각 판매되고 있다. 언뜻 가격경쟁력이 있어 보이기도 해서 반갑기는 한데 영 개운치 않다.
커피나무는 겨울이 없는 열대·아열대 지역에서만 자란다. 뿌리와 잎이 추위에 약해 얼어 죽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비닐하우스의 제한된 공간에서만 재배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가격경쟁력을 갖기는 힘들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가격에 한국커피를 판매할 수 있는 것일까?
지난해 수입한 커피 생두는 총 20만t이다. 액수로는 13억달러(약 1조7600억원)에 달했다. 외화가 대량 유출되는 커피 부문에서, 한국커피가 당장 수입대체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 농촌진흥청이 2021년 조사해보니 국내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시설하우스의 면적이 총 8.6㏊에 그쳤다. 1㏊가 3000평 정도이므로 전체 면적은 2만6000평. 논으로 치면 130마지기이고, 축구경기장 12개를 합한 크기이다. 1㏊에 심을 수 있는 커피나무의 수는 품종과 지형에 따라 다르지만 1000그루가량이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 커피 열매를 수확할 수 있을지도 나라마다 다르지만, 통상 10t으로 계산한다.
그러나 커피는 열매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 들어 있는 씨앗만을 가려내야 하는 것이므로 생산량이 10분의 1로 줄어든다. 2021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커피 생두는 많아야 8.6t 정도이다. 한 해에 수입하는 커피 생두의 양과 비교하면 0.0043%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1년에 생산되는 커피 생두의 양(1억6500만t)과 견주면, 한국커피의 존재감은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에서 개미 한 마리가 차지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을 만큼 미약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한국커피만이 갖는 특성, 즉 테루아(Terroir)를 세계 시장에 인상 지우는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세계적으로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커피생두를 상품화한 사례를 한국 외에는 찾기 힘들다. 희소성의 가치가 크다. 기후온난화로 한국에서도 특정 지역부터 커피를 노지 재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미래의 잠재적인 커피 대량 생산국으로서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구환경 보호를 위해 커피를 나무에서 수확하지 않고 실험실에서 만들어내는 산업이 커지면서, 과학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우리도 소위 ‘빈리스 커피’(Beanless coffee)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
커피 생산국으로 첫발을 내딛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훗날 한국의 커피 재배자들이 지날 길을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고흥커피를 내다 판 방식을 보면 아쉽다. 한국커피만을 팔면 가격이 너무 오르기 때문인지 이문이 별로 남지 않아서인지 콜롬비아와 파푸아뉴기니 커피를 섞었다. 현재로써는 국내에서 생두 1㎏을 생산하는 데 적어도 30만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고흥커피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표시하지 않은 것은 문제다. 생산량 부족을 ‘희소성의 가치’로 승화시킨 하와이 코나는 10% 이상 자신들의 커피가 섞이면 ‘하와이 코나 커피’라고 표기할 수 있도록 규칙을 정해 지키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커피라고 자랑하는 제품에 고흥커피가 몇 % 들어갔는지 밝히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한국커피를 얼마나 섞었는지 밝히지 않고 고흥의 테루아를 운운하며 광고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첫발이 투명하지 않아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 영영 새 길을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