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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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철학자' 이안 보스트리지, 한국 찾아 인문학 강연 무대

영국 출신 세계 정상급 테너이자 ‘노래하는 철학자’로 유명한 이안 보스트리지(59)가 한국을 찾아 인문학 강연 무대에 선다. 다음 달 9∼22일 열리는 ‘제6회 힉엣눙크(Hic et Nunc)! 뮤직페스티벌’이 ‘음악, 인문학으로의 초대’라는 제목의 보스트리지 강연과 함께 개막하기 때문이다. 힉엣눙크는 ‘여기 그리고 지금(Here and Now)’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앙상블 세종솔로이스츠가 주최한 이 축제는 정해진 형태 없이 현재의 시대 정신과 클래식 음악계 흐름을 반영한 음악을 선보여왔다. 

다음달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는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세종솔로이스츠 제공

‘통찰력이 깃든 가곡의 해석가’란 평가와 더불어 그래미상 본상 등 세계 주요 음악상은 물론 대영제국 훈장까지 받은 보스트리지는 어떤 음악가들보다 지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전문 성악가의 길로 들어서기 전까지 인문학자였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에서 각각 철학 석사와 역사학 박사 학위를 딴 후 옥스퍼드대에서 연구원 겸 강사로 일했다. 

 

보스트리지는 26일 세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내가 학자와 성악가 경력 둘 다 쫓던 당시 학계에서는 ‘음악으로 외도하는 박사’, 음악계에서는 ‘노래 잘하는 박사’ 정도로 엇갈려 생각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다소 늦은 29살에야 직업 성악가가 된 그는 “오페라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이(가수의) 길에 들어서게 했지만 내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인문학 탐구를 완전히 접지 않았다. “인류의 역사나 우리 사회를 이해하고, 도덕적인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미래 어느 곳을 향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인문학과 음악 모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이번 강연에서 반전과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대곡 ‘전쟁 레퀴엠’으로 유명한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1913∼1976)과 전쟁의 연관성을 전할 예정이다. “브리튼은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위대한 작곡가로 경력 초기부터 다양한 사회적 주제를 작품에 담았다”고 한 보스트리지는 강연 내용을 묻는 질문에 “요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정도만 귀띔하겠다”며 강연 기대감을 높였다.

 

그는 다음 달 14일 세종솔로이스츠와의 공연에서도 브리튼의 ‘일뤼미나시옹’을 노래한다. 프랑스의 천재 시인 랭보(1854∼1891)의 동명 시집에서 발췌한 9개의 산문시에 브리튼이 음을 붙인 작품인데 한국 관객들에겐 낯선 곡이다.

“‘일뤼미나시옹’은 환각적 이미지가 가득합니다. 관능적이고 재미있으면서도 어둡죠. 인간사를 거울처럼 온전히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브리튼이 창조한 ‘소리’의 세계가 랭보가 창조한 ‘시어’의 세계와 만나는 순간을 관객들이 즐겼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일뤼미나시옹’을 더 재미있게 감상하려면 가사를 먼저 읽고 공연장에 오길 바란다고 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