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지옥/최지수/세종서적/1만8000원
전세는 지난 50년간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제도였다. 사글세, 월세를 거쳐 자가라는 종착지로 가기 전 마지막 디딤돌 같은 존재였다.
긍정적인 내용을 과거형으로 서술한 이유는 ‘빌라왕’으로 시작된 연이은 전세 사기 때문이다. 인천, 수원, 천안 등 전국에서 수천 명의 피해가자 수천억원을 떼였다. 스스로 생을 포기한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사기극에 말려들었을까.’ 신간 ‘전세지옥’은 이런 질문을 떠올리는 사람에게 답을 제공한다.
‘대치동 뱁새’로 학창 시절을 보낸 저자는 바퀴벌레와 녹물이 없는 ‘꿈의 공간’을 구하는 과정과 그 꿈이 순식간에 악몽으로 변하는 과정을 자세히 그린다.
그의 전세금은 총 5800만원. 큰돈인 만큼 친척 어르신에게 조언을 구하며 신중을 기했지만 1년여 만에 그의 현관문에는 경매 통보문이 붙었다.
전 재산을 잃은 후 그의 삶은 ‘투쟁’이 됐다. 820일간 시청, 법원, 경찰서, HUG, 주거복지재단을 쫓아다녀야 했다. 집 소유자, 집을 소개한 공인중개사 등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감시망과 안전망도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구제를 위한 전세사기피해확인서와 긴급생계지원금은 너무 받기 어려웠다.
돈도 돈이지만 ‘파일럿’을 꿈꾼 저자의 미래도 꼬였다. 지금 그는 교육비 마련을 위해 원양상선 승선을 대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