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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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에서 고립되는 헝가리… 스웨덴 나토 가입 '빨간불'?

푸틴과 악수한 오르반 겨냥한 비판 '쇄도'
아랑곳 않고 '독불장군' 행보 계속 이어가
"스웨덴 나토 가입 비준 서두르지 않겠다"

헝가리가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반대하는 마지막 국가로 남을까. 눈에 띄는 친(親)러시아 행보로 유럽연합(EU) 내에서 차츰 고립돼 가는 헝가리가 ‘모종의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근심이 확산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26일부터 이틀 일정으로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는 헝가리 성토의 장이 되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지난 17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상 포럼에 참석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한 것 때문이다. EU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미국, 나토 등과 더불어 국제사회의 대(對)러시아 제재를 주도하고 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왼쪽)이 지난 17일 중국 베이징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EU와 러시아의 관계에 비춰 EU 회원국이 러시아와 개별적인 양자 접촉을 갖는 것은 EU의 단합을 저해할 수 있다”고 헝가리 정부 그리고 오르반 총리를 비판했다. 러시아를 ‘EU 최대의 적(敵)’이라고 규정한 마크롱 대통령은 “헝가리는 EU에 가입함으로써 그 주권 일부를 EU에 양도하기로 이미 결정한 것”이라고도 했다. 러시아와 상대함에 있어 EU 지도부의 지침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도 오르반 총리를 나무랐다. 그는 “오르반 총리가 푸틴과 악수를 나눈 행위는 우크라이나, 더 나아가 모든 유럽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이들을 모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에선 러시아의 공격에 매일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고도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회원국 정상들을 향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긴밀한 조율과 투명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회원국의 독자적인 행위가) EU 전체에, 또 EU의 단결에 영향을 끼쳐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오르반 총리는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그는 기자들에게 “헝가리는 러시아와 모든 소통 채널을 계속 열어둘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평화의 기회가 아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헝가리는 이 점(러시아와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까지 했다.

 

일각에선 헝가리가 EU에서 고립되면 고립될수록 스웨덴의 나토 가입 성사가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를 제기한다. 최근 튀르키예에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제껏 튀르키예와 헝가리의 반대로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지연돼 왔는데, 일단 튀르키예 쪽은 해결이 된 것으로 보인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2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동안 외신들은 튀르키예의 입장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판단해 헝가리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르반 총리가 앞서 “헝가리가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반대하는 마지막 나라로 남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는 튀르키예가 마음을 바꾸면 헝가리도 찬성 쪽으로 돌아설 것이란 뜻으로 풀이됐다.

 

그런데 튀르키예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헝가리는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이다. 오르반 총리는 대놓고 “스웨덴의 나토 가입안 비준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헝가리에서 법치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퇴보한다’는 식의 비판을 제기해 온 스웨덴이 먼저 헝가리에 사과하고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헝가리 정치인들 사이에선 “스웨덴이 그토록 헝가리가 밉다면 왜 나토를 통해 우리와 함께하려 하느냐”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튀르키예라는 산을 넘고 한숨 돌린 스웨덴이 헝가리라는 더 높은 산과 마주한 형국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