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변동금리 대출 비중을 줄이기 위한 ‘변동금리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연내 신속히 도입하기로 했다.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는 상황에도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에 급격히 불어나고 있는 가계부채 뇌관이 언제든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고위당정협의회를 열어 가계부채 대응 방향과 서민 실수요층의 어려움 경감 방안 등을 논의했다.
당정은 고금리에 노출된 가계부채 취약성을 개선하기 위해 높은 변동금리 대출 비중부터 개선하기로 했다. 정부는 변동금리 대출 비중을 축소하기 위해 DSR 산정 시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변동금리 스트레스 DSR’을 연내 신속히 도입하고 장기·고정금리 대출 확대를 위한 커버드본드(이중상환청구권부 채권) 등 다양한 조달 수단의 활용을 제고할 계획이다. 이중상환청구권부 채권은 금융 기관이 부동산 담보대출 등 자신이 보유한 고정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채권을 말한다.
당정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5%까지 오른 2021년과 비교하면 지난 1분기 101.5%라는 수치는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과도한 부채 억제를 위해 시행 중인 50년 만기 대출 시 DSR 산정만기(최대 40년) 개선과 금융권의 50년 만기 주담대 취급 자제 요청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가계부채 위기가 발생하면 1997년 기업부채로 인해 우리가 겪었던 외환위기의 몇십 배 위력이 될 것”이라며 문재인정부에서 시작된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김 실장은 “가계부채 문제는 잘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라며 “특히 과거 정부에서 유행한 영끌 대출이나 영끌 투자, 이런 행태는 정말로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현 가계대출 수준이 지난 정권과 비교해 안정적이라는 정부의 평가에도 가계대출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한 경고음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가계대출 잔액(26일 기준)은 684조8018억원이다. 9월 말(682조3294억원) 대비 2조4723억원 늘었는데, 월 증가 폭으로는 2021년 10월(3조4380억원) 이후 2년 만에 가장 큰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날 홈페이지에 공개한 최근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 전망을 주제로 싱가포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의 녹취록에서 한국 가계부채 수준이 가처분소득 대비 평균 160%에 달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특정 기준이나 비율을 정해 놓지 않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 그룹 가운데서도 꽤 높은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IMF는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건전성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금융연구원도 이날 ‘가계부채 리스크와 거시요인의 동태적 분석’ 보고서를 통해 내년 말 은행권의 가계부채 고정이하여신(NPL) 규모가 2조8000억원에서 최대 3조1000억원까지 불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말(1조6000억원) 규모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의 저금리로 인한 대출비용 하락과 부동산 수요 증가가 겹치면서 가계대출이 급격히 증가한 영향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0∼2022년 모든 금융권의 가계대출은 연평균 6.8% 늘어난 반면,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이 기간 2.4%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소득 대비 가계대출 비중을 의미하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은 연평균 4.4% 증가했다.
다만 가계부채 증가가 금융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은행권의 충당금(손실에 대비해 적립한 금액) 잔액이 23조원에 달해, 은행의 손실흡수능력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계대출 부실화 충격이 은행별로 차이가 클 수 있어, 개별 은행 차원에서 충당금 적립 비율을 선제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지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소득증가율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가계부채가 누적된다면 장기적으로는 결국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으로 인한 경기침체와 소득감소 등 가계부채 리스크로 이어질 것”이라며 “가계부채율을 소득증가율 수준까지 점진적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DSR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