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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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네가 아니라서 아쉬워’

리커창 갑작스러운 부고 맞물려
中 SNS서 조용히 회자되는 노래
하루아침에 관련 검색어 사라져
‘리커창 애도물결’ 中 당국 긴장

말레이시아 출신으로 중화권에서 주로 활동하는 가수 량징루(梁靜茹·양정여)의 인기곡 ‘네가 아니라서 아쉬워’(可惜不是?)가 또다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중국인들 사이에 조용히 회자되고 있다. 지난 27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리커창(李克强) 전 중국 총리와 맞물려서다.

2005년 발표된 이 노래는 헤어진 연인을 향해 “끝까지 함께할 사람이 네가 아니라서 아쉽다”고 말하는 애절한 발라드지만, 이번에 소환된 건 가사가 아닌 제목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것이 네가 아니라서 아쉽다는 어감을 주는데, 그게 누구인지는 가수 싸이가 리메이크한 ‘환희’의 노랫말에 잘 나와 있는 듯하다. “누구를 누구라 표현하긴 했다만 누가 누군지 누구나 다 아는” 그런 인물로, 그 이유 역시 다음 가사인 “매일 밤 뉴스에서 보니까” 정도가 되겠다.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

‘네가 아니라서 아쉬워’는 지난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 피살 때와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총리 사망 당시에도 언급된 적이 있다. 같은 이유에서다. 다만 이는 엑스(옛 트위터) 등 중국 당국의 입김이 닿지 않는 매체에 국한된 현상으로, 웨이보 같은 국내용 SNS에는 어림없는 이야기다.

웨이보에도 리 전 총리의 사망에 대한 애도 물결은 이어졌다. 중국 네티즌들은 리 전 총리의 발언을 언급하며 그를 기렸다. 그는 지난해 8월 덩샤오핑(鄧小平) 전 주석의 동상에 헌화한 뒤 “장강(양쯔강)과 황허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長江黃河不會倒流)고 발언했다. 당시는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집하며 국경을 봉쇄한 상태로, 개혁개방을 이끈 덩 전 주석 앞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리 전 총리는 앞서 2020년 전국인민대표대회 연례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6억명의 월 수입이 1000위안(약 18만원)밖에 안 되는데, 이 돈으로는 집세를 내기도 힘들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시 주석의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 사회’ 건설 선언을 반박하는 것으로 읽혔다. 지난 3월 총리 퇴임을 앞두고 국무원 직원들과 작별인사에서 한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做 天在看)는 발언도 다시 회자된다. 언제든 자기 소임을 다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절대 권력을 장악한 중국 최고 지도부에 대한 견제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이런 문구와 추도 메시지를 현재 중국 SNS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리 전 총리의 사망 직후 웨이보에서 ‘리커창 동지 부고’가 검색어 순위 상위에 포진했지만 곧 순위에서 밀려나 없어졌다. 대신 29일 오전 웨이보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는 ‘중화민족공동체의식’, ‘시진핑 주석,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제9차 집체학습(단체 스터디) 주최’ 등 시황제(習皇帝) 시대 관제 느낌을 짙게 풍기는 단어들이 올라와 있다. 그나마도 후자를 클릭하면 ‘원활한 환경을 위해 로그인 후에 볼 수 있다’는 안내가 떴다. 검색어에 포함된 이름 때문인 것 같았다. 중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메신저 위챗은 리 전 총리의 사망 직후 한때 ‘리커창’이라는 단어의 전송을 통제했다가 관영 매체들이 사망 소식을 보도한 뒤 제한을 풀었다.

SNS에는 최근까지도 건강한 모습이었던 리 전 총리가 급사한 것과 관련해 사인에 의문을 표하는 게시물도 올라왔다. 하지만 리 전 총리의 사망으로 더 당혹스러운 것은 중국 당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76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의 사망과 1989년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 사망에 따른 추모 열기가 각각 1, 2차 톈안먼(天安門) 시위로 이어지는 등 명망 있는 정치인의 죽음이 대규모 시위를 불러온 바 있기 때문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리 전 총리의 급사는 중국 최고지도부에 완전한 충격이었고, 예상하지 못한 사망이었기 때문에 공식 부고도 준비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높은 실업률과 경제침체 우려를 마주한 중국 당국이 리 전 총리 애도 물결을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 궁금해진다.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