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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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스펀지 폭탄

게임체인저(game changer)란 말은 특정 무기체계가 전쟁이나 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때 종종 사용된다. 인류는 더 멀리, 더 정확하게 적을 타격하는 무기를 갖기 위해 골몰해왔다. 전장은 그런 신무기들의 경합무대였다. 21세기 들어 이런 전쟁 양상이 변하고 있다. 무인 드론이 폭격에 나서고, 아이언맨 같은 로봇이 시가전을 벌이는 미래가 눈앞에 다가왔다.

지난해 2월 28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민간위성업체 맥사(Maxar) 테크놀로지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향하는 64㎞의 러시아 수송부대 행렬이 포착됐다. 양국 군사력 격차를 보여주며, 금세 군사 작전이 마무리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우크라이나군이 보유한 바이락타르 TB2 전술 드론과 하이마스(HIMARS) 다연장 로켓시스템 때문이다. 이들 무기가 활약하며 전세는 급변했다.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빠진 원인 중 하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8일 “가자지구에 이스라엘 지상군이 추가로 투입되면서 하마스와 전쟁 2단계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복수전이 시작됐음을 선언한 것이다. 가장 큰 변수는 하마스가 파놓은 땅굴이다. 외신에 따르면 하마스의 땅굴은 깊이 30m, 총 연장 길이는 483㎞로 추정되며, 가자지구 곳곳의 집과 건물 지하를 거미줄처럼 이어 만들어 ‘가자 지하철’(Gaza Metro)로 불린다. 로켓 수천 개가 은닉돼 있고, 곳곳에 함정이 구축돼 있으며 지뢰까지 매설된 것으로 전해졌다. 쉽게 궤멸시키기가 어렵다.

시가전은 시간을 끌면 불리하다. 이를 잘 아는 이스라엘이 지상군 투입을 결정한 것은 신무기 등 믿는 구석이 있어서일 게다. 마침 이스라엘군이 스펀지 폭탄을 준비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스펀지 폭탄은 비닐봉지에 두 종류의 액체를 분리해 담아놓은 형태로 폭발 물질은 들어있지 않다. 던지면 내부의 액체가 섞이면서 거품이 생기고 팽창한 뒤 바로 단단해지며 땅굴과 터널의 입구를 막는다고 한다. 화해와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은 당분간 미뤄졌다. 게임체인저가 될 무기의 등장으로 그저 전쟁이 빨리 끝나기만 바랄 뿐이다. 모든 전쟁이 그랬던 것처럼 인도주의적이고 정의로운 해법은 없다.


박병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