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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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통합’ 외치곤 친명 지도부 강화한 李의 ‘말 따로 행동 따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7일 공석인 지명직 최고위원에 충청 출신 여성인 친명(친이재명)계 박정현 전 대전 대덕구청장을 임명했다. 정책위 의장에는 친이낙연계로 분류되는 호남 출신 3선 이개호 의원을 임명했다. 민주당은 “지역 안배와 당내 통합을 위한 이 대표의 의중이 반영된 인사”라고 설명했지만 군색하다. 비명(비이재명)계 이 의장을 발탁해 구색을 맞췄을 뿐 비명계 송갑석 최고위원이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여파로 자진사퇴한 자리를 친명계 원외 인사로 채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지난 23일 당무 복귀 첫 일성으로 ‘통합’을 외치고선 외려 친명 지도부 색채를 강화한 것이다.

비명계는 이번 인선의 의도를 의심한다. 박 최고위원이 내년 4월 총선에서 비명계 박영순 의원 지역구(대전 대덕) 출마를 준비하는 만큼 ‘비명계 찍어내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충청권 배려 차원이라면 박영순 의원도 있고, 강훈식·조승래 의원 등 계파색이 옅은 인사들도 있는데 굳이 박 최고위원을 임명한 것을 보면 비명계가 반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대표가 당장은 당의 단합을 위해 비명계 의원들을 손보지는 않겠지만 총선 공천 물갈이를 통해 솎아낼 것이라는 당내 의구심은 여전하다.

이 대표가 ‘체포동의안 가결파’ 의원들 징계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라”면서도 극성 지지층인 ‘개딸’의 비명계 공격과 친명계의 가결파 징계 주장을 수수방관하는 것도 발언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지난 24일 비명계 이원욱 의원 지역구인 경기 화성시 사무실 앞에 비명계 의원들에 대한 살해 위협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등장했다. 현수막에는 “총알이 있다면 왜놈보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배신한 매국노를 처단할 것이다”라는 문구와 깨진 수박을 비명계 의원 9명의 얼굴에 모자처럼 씌운 합성 사진이 담겼다. ‘처럼회’ 소속 양이원영 의원은 지난 2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가결파 징계를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이 대표가 이들을 강력히 제지하지 않는 건 묵인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대표의 ‘말 따로 행동 따로’ 행태는 이번만이 아니다.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고 국민 앞에 여러 차례 약속했다가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 이 대표가 내년 총선을 위한 정치적 셈법으로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면서 행동이나 실천을 외면한다면 자신은 물론 민주당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