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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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규칼럼] 소비 부진에 관한 단상

금리인상 중단되자 가계빚 증가
소비부진 와중에 이례적인 현상
전반적 경제정책의 문제성 시사
당국의 한가로운 인식 더 불안

최근 소비 관련 지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8월 소매 판매액 지수가 대폭 감소하였다. 소비 관련 서비스업 생산 지수도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소비 위축 조짐은 2분기 국민소득 통계에 이미 나타났다. 2분기 소비 증가율이 1분기의 4.6%에서 1.6%로 대폭 낮아졌다. 불가피한 의료보건, 교통, 교육 등의 지출은 지속되는 데 비해 임의 지출 대상인 재화와 서비스의 소비가 급격히 줄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부진은 단기적인 문제가 아니다. 2000년대 이래 소비성향이 줄곧 하락해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소비 부진에는 다양하고도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그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 점이 적지 않다.

사실 소비는 국민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국민소득을 구성하는 항목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국민의 실제 생활형편을 나타내는 핵심 변수이기도 하다. 이에 더하여 소비는 경제 안전판의 역할도 수행한다. 아울러 소비는 경제 체질의 실상을 반영하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이종규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소비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만일 소비 위축이 가시화된다면 생겨나는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우선 소비부진으로 경세성장률이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팬데믹 이후 경제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소비가 경제성장을 견인해왔다. 최근 소비 부진은 이 추세가 끊기고 경제성장 동력이 상실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저하고(上低下高)”라는 경제전망이 어긋날 수도 있다.

게다가 국민들의 생활 여건이 현저히 악화되고 있다는 점도 반영하고 있다. 당장 고물가 고금리의 여파가 가계에 타격을 주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가계부채 규모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고금리의 영향이 큰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소비부진에는 교역조건의 악화, 고용구조의 취약성 증대, 소득불균형의 심화, 고령화의 진전 등 여러 유형의 구조적 문제점도 반영되어 있다. 2000년대 이래 소비성향의 추세적 하락은 이런 요인들에 기인한 것으로 우리 경제 체질이 약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소비 부진은 앞으로 우리 경제의 회복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소비 부진이 지속된다면 수출 호조 등 경제 여건이 개선되더라도 국내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소비가 부진한 상황에서는 경기대책 등의 효과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한편 최근의 소비부진이 가계부채 증대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빚을 갚기 위해 소비를 줄이는 것은 이해되지만 가계부채가 늘면서 소비가 부진한 것은 통상적이지는 않다. 이와 같이 특이한 현상은 외국과 대비된다. 근래 우리나라는 스위스 호주 캐나다 스웨덴 등과 더불어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왔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에서는 고금리를 배경으로 지금 이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만 이 비율이 상승하고 있다.

소비부진과 가계부채 증가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경제정책 기조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애초 한국은행은 정책금리 인상의 배경으로 금융불균형 완화와 물가 안정을 꼽았다. 그러나 금리 인상이 중단되고 난 이후 가계부채가 증가함으로써 금융불균형은 더욱 심화되었고 물가불안으로 소비는 위축되었다. 거시경제정책 기조의 과오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사태가 빚어진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최근 소비부진의 이면에는 이와 같이 중요한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당국의 인식은 한가롭기만 하다. 경제성장률이 당초 전망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안심하는 듯하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면서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 듯하다. 경제성장률이 다소 높아진들 국민들 생활 형편이 얼마나 나아지겠는가?

소비마저 부진해지면서 우리 경제는 어려움이 한층 가중되고 있다. 소비부진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정책기조의 변경과 아울러 다양한 경제체질 강화방안들이 나와야 한다. 이에 관하여 여러 관계 당국과 기관들의 관심이 촉발되기를 기대한다.


이종규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