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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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10) 그란비아와 마드리드의 숨은 명소들

멀고도 가까운 나라 스페인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 올해 73주년을 맞은 유럽의 전통우호국이다. 과거에는 투우와 축구의 나라로만 알려졌으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주요한 유럽 관광지다. 관광뿐 아니라 양국의 경제· 문화 교류도 활발해지는 등 주요한 관심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연재를 통해 켈트, 로마, 이슬람 등이 융합된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2년여 공사 기간을 거쳐 재작년 11월 재개장한 스페인 광장. 접근성을 강화하고, 보행자의 편의를 높이고 녹지 공간을 늘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 MADRID DESTINO

1990년대 필자가 마드리드에 처음 갔을 때다. 지도를 들고 넓은 그란비아 거리에서 헤매고 있다가 지나가던 스페인 할아버지에게 국립인류학 박물관이 어딘지 물었다.  처음에는 나한테 자세히 길을 알려 주다가 나중에는 따라오라고 하셨다. 30도에 육박하는 7월의 스페인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40여 분 걸어서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주셨다. 그때는 스페인에 한국인이 거의 없어서 나를 일본인으로 착각하기도 하셨지만, 아직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리의 광화문 대로 혹은 종로쯤에 해당하는 그란비아의 역사는 100년이 넘었다. 1862년 마드리드 도심 재개발 계획으로 설계도는 일찍 만들었지만, 300개가 넘는 빌딩을 부수고, 50개의 거리를 뜯어고치는 바람에 1929년에야 완성됐다. 최근에는 거리 환경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당국이 시민들을 위해 녹지 공간을 넓히고, 왕복 6차선을 4차선으로 줄여 보행로를 넓혔다.

프란시스코 고야. 1788년 作. 작품명 산 이시드로 초원. 그림 오른쪽 윗부분에 보이는 거대한 돔을 가진 큰 건물이 유명한 산 프란시스코 엘 그란데 대성당이다. 프라도 국립미술관 소장
라 라티나 지구의 카스코로 광장. 중세시대 골목이 미로처럼 그대로 남아있다. 천천히 걸어 다니며 구경하다가 다리 아프면 근처 타파스 바에서 커피나 와인 한잔 하기 좋다. © MADRID DESTINO

현지인처럼 살아보고 싶다면 근처에 있는 바리오 데 라 라티나, 줄여서 라 라티나라고 불리는 지구로 가면 된다. 이곳에 중세시대 마드리드 최초의 도시 성벽이 있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고, 그 당시 형성된 미로처럼 좁은 골목이 얽혀있다. 골목마다 타파스 바와 전통 선술집이 가득하다. 마드리드 사람들은 일요일마다 열리는 엘 라스트로 벼룩시장을 찾은 후 이곳에 들러 타파스를 즐기곤 한다. 근처의 산 프란시스코 엘 그란데 대성당은 지름 33m짜리  돔 지붕을 가진 거대한 건물로 마드리드에 있는 5대 왕실 대성당 중 하나이다. 고야와 수르바란과 같은 스페인 거장들이 장식화를 그렸다.

말라사냐 지구내 거리와 시민들의 모습. © MADRID DESTINO

현지인문화 중에서 젊은 문화를 대표하는 ‘힙’한 곳은 말라사냐이다. 그란비아 북쪽에 바로 붙어있다. 이 지역의 이름에는 슬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1808년 5월 스페인의 2차 독립 봉기 때 나폴레옹 군인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17세 재봉사 소녀 마누엘라 말라사냐의 이름을 딴 곳이다.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로 인기가 높은 말라사냐는 바와 커피숍, 빈티지 의류 판매장이 많다. 마드리드답게 주말에는 노점과 벼룩시장이 선다. 젊은이들의 성지답게 밤에는 클럽 문화가 돋보인다. 모두 다시 가보고 싶은 곳들이다.


이은진 스페인전문가·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