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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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고 금값에… “돌반지 살 엄두 못 내요”

서울 종로 귀금속거리 가보니

중동정세 불안에 안전자산 선호
3.75g당 37만4000원까지 치솟아
1년 만에 14% ↑… 10년 전의 2배
금 내다팔려는 움직임 크게 늘어

31일 오후 서울 종로3가 귀금속거리. 평일인데도 금은방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심심치 않게 이어졌다. 한 금은방을 찾은 직장인 A씨는 “내년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중동 정세 불안으로 금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 해서 잠깐 들렀다”며 “예물을 언제 사야 할지 타이밍을 보고 있다”고 했다. 조카의 돌반지를 맞추기 위해 찾았다는 B씨는 “한돈짜리는 엄두도 못 내고 반돈을 하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그마저도 판매하는 곳이 잘 없고 가격도 생각보다 높다”며 “더 얇은 돌반지로 할지 다른 선물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종로3가에서 금거래소를 운영 중인 C씨는 “지난 4, 5월에 올랐던 금값이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며 “금을 사고팔려는 손님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내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찍으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하마스 전쟁)으로 인해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안전자산 수요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값은 10월 28일 3.75g(한 돈)당 37만4000원으로 2014년 금시장이 개설된 이후 역대 최고가를 찍었다.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기준 살 때 금값은 한 돈당 36만9000원을 기록했다. 1년 전인 지난해 10월 32만3000원보다 14%가량 올랐다. 10년 전인 2013년 18만5000원보다는 2배나 가격이 상승했다.

이처럼 금값이 치솟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이·하마스 전쟁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본격화하면서 ‘5차 중동전쟁’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유가 상승까지 맞물렸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안전자산인 금에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실제로 국제 금값은 온스당 2000달러를 돌파하며 치솟고 있다.

금값은 지난 5월에도 고점을 경신한 바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스위스 은행 크레디스위스(CS) 합병 등으로 국제적인 금융위기 조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당시 1㎏골드바 소비자 판매가는 1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최고점을 돌파한 이후 하락세를 보이던 금값은 6개월 만에 회복 기미를 보이며 다시 우상향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금값이 오르자 금을 내다 팔려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금값이 고점을 기록했던 지난 5월과 6월에는 각각 764㎏, 110㎏의 금이 매입됐다. 이후 7월 17㎏, 8월 39㎏, 9월 71㎏이었던 금 매입량은 금값이 상승세를 탄 10월에는 단 10일 동안 250㎏까지 늘어났다.

송종길 한국금거래소 대표는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 삼중고에 경기침체까지 맞물리면서 금값 상승으로 인한 차익실현 매물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하마스 전쟁 확전 가능성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장기화에 따라 안전자산 선호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당분간 금값은 우상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박미영 기자 mypar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