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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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인권 외치며 이주민 착취”…伊 하원의원 ‘두 얼굴’ 논란

부바카르 수마호로 이탈리아 하원의원. EPA 연합뉴스

 

이주민 처우 개선에 헌신해온 노동운동가 출신의 아프리카계 이탈리아 현직 하원의원의 가족이 세운 ‘이주민을 위한’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이주민을 착취해 논란이 일고 있다.

 

30일 안사(ANSA) 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중남부 라치오주의 라티나 법원이 아부바카르 수마호로(43) 하원의원의 아내와 장모에 대해 가택 연금 영장을 발부했다.

 

수마호로 의원의 아내와 장모는 이주민과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에게 일자리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2곳(카리부, 콘소르치오)을 운영하면서 임금을 착복하고 정부 지원금을 부정으로 수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정부 지원금을 해외 계좌로 이체해 자금을 세탁한 뒤 개인 용도로 쓴 것으로 밝혀졌다.

현지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 따르면 수마호로 의원의 아내는 명품 의류와 보석을 구매하는데 100만유로(약 14억원)를 썼다.

 

반면 수마호로의 가족이 세운 협동조합에서 일한 이주민들은 전기와 수도도 없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해야 했다. 게다가 일부 이주민 노동자는 3년째 임금을 받지 못했다.

 

검찰은 이들이 부당하게 수령한 정부 지원금을 환수하기 위해 자산 압류 조치에 나섰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노동운동가로 언론의 주목을 받아온 수마호로 의원은 이번 스캔들로 위선의 가면을 썼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수마호로 의원은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태어나 19살 때인 1999년 로마로 건너왔고, 대학 졸업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지난해 9월 25일 치러진 이탈리아 조기 총선에서 녹색·좌파당 소속으로 당선돼 유일한 현직 흑인 하원의원이 됐다.

 

특히 그는 선거 기간 내내 조르자 멜로니 현 총리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반이민·반난민 정책을 비판했고, 이탈리아 의회 개원 첫날에는 진흙투성이 고무장화를 신고 나서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런 행보로 수모호로는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멜로니 정부와의 투쟁에서 야권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받았지만, 한순간에 수세에 몰렸다.

 

수마호로 의원은 지난 1월 녹색·좌파당을 탈당했다. 그는 아내의 화려한 옷차림에 대해 아내가 ‘패션에 대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며 옹호했다가 더욱 비난을 사기도 했다. 그는 아내와 장모의 가택 연금에 대해서도 “나는 어떠한 것에도 관여하지 않았다”며 “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해줄 것을 다시 한번 요청한다”고 밝혔다.


서다은 온라인 뉴스 기자 dad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