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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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를 촉발시킨 것은 부르고뉴 와인? [명욱의 술 인문학]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와인이 있다. 프랑스 동부에 위치한 부르고뉴 지역의 로마네 콩티다. 가볍게 3000만원을 넘어가는 와인으로, 가장 비싸게 낙찰받은 제품은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55만9000달러, 지금 환율로 7억원이 넘는 가격으로 낙찰된 1945년산 제품이다. 특히 1945년산 로마네 콩티가 더 높은 가격으로 낙찰된 이유는 1945년이 프랑스 토종 포도로 로마네 콩티를 만든 마지막 해이기 때문이다. 병충해에 약했던 프랑스 포도는 북미에서 유입된 필록세라라는 해충 때문에 19세기부터 막대한 피해를 입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미국의 포도나무와 접붙이기를 한 것이다. 미국의 포도는 해당 해충에 내성이 있었다. 그래서 프랑스 토종 포도로 만든 로마네 콩티는 1945년이 마지막인 것이다.

부르고뉴 지역은 로마네 콩티를 제외하고도 고가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역사적 사건에서도 이러한 배경이 존재한다. 이곳에서 유럽 수도원 운동이 시작됐고 또 정점을 찍었다. 수도원 운동의 핵심은 수도원의 독립성을 찾자는 것이다. 10세기 전후, 당시 권력을 가지고 있던 것은 왕이나 제후였다. 주교 및 수도원장의 임명권도 제후나 영주에게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면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이 위스키와 연관돼 있다. 사진은 싱글몰트 위스키 발베니.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제공

이러한 상황에서 909년 프랑스 아키텐 공작인 기욤 1세는 부르고뉴에 수도원을 세우면서 해당 수도원을 완벽한 독립체의 조직으로 만든다. 지금의 마콩 지역에 있는 클리뉘 수도원이다. 그러면서 왕은 물론 백작, 주교 등도 이곳의 재산을 침범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재정 자립을 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바로 포도 농사와 와인 제조였다. 결국 재정적으로 자립하고 독립성을 찾기 위해 벼랑 끝에서 만든 포도 및 와인이 현재의 최고 와인 산지인 부르고뉴를 만들게 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부르고뉴 클뤼니 수도원을 거쳐 간 인물들이 세계사에 어마어마한 종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바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 중학교 세계사 시간에 등장하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와 격돌한 인물이다. 주교의 서임권 문제로 갈등을 겪은 그는 결국 하인리히 4세를 파문, 수많은 제후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자 결국 하인리히 4세는 카노사 성에서 용서를 구한다. 후에 하인리히 4세가 복수를 하지만 결국 황제의 권위는 실추되고 교황 권력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전환기의 모습이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그리고 유럽 위스키 탄생에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 인물이 클리뉘 수도원장 출신인 교황 우르바노 2세다. 기독교의 세력이 더욱 강해진 이때 그는 주교들과 성직자들로 하여금 왕이나 제후에게 이행하는 충성 서약을 아예 금지시켰다. 그리고 그가 제창한 거대한 사건이 등장하는데 바로 십자군 전쟁이다.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이교도로부터 탈환하자는 것. 십자군 전쟁의 결과로 이슬람에서 발달한 연금술이 번역됐고 그중 증류 기술도 유럽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후 증류 기술은 북아프리카, 스페인, 아일랜드, 스코틀랜드를 거쳐 발전하면서 해당 지역에 위스키로, 동유럽에는 보드카로 그리고 프랑스에는 코냑으로 이어진다.

결국 전혀 상관없는 듯한 부르고뉴 와인과 위스키가 연결된다는 것. 꼬리에 꼬리를 물면 세상의 모든 것이 결국 이어진다는 연결 고리를 이 부르고뉴 와인과 위스키에서 찾은 듯하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연세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교육 원장,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도 맡았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에는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