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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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미야자키 영화에 대한 해석 [엄형준의 씬세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난해”, “전쟁 비판 결여” 관객 비판
미야자키, 모순적 자기 세계 시인하며 새 세대를 향한 메시지 담아
외고조는 일왕, 앵무새대왕 군부 상징…그림자 인간은 굶주린 민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누적 관객 100만을 넘어선 가운데, 영화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2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25일 개봉한 영화는 전날까지 8일간 111만여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줄곧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특수관인 아이맥스(IMAX)는 주말까지 구석을 제외하면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CJ CGV의 실관람평지수인 ‘골든 에그’는 영화 개봉 초반 60%대로 낮은 평점을 의미하는 ‘터진 계란’이었다. 지금은 70%대로 점수가 약간 올랐지만, 여전히 “재미 없다”, “난해하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시사회나 감독의 인터뷰도 하지 않은채 아무런 정보도 없이 개봉한 이 영화는 도대체 어떤 의미이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를 난해해 하는 관객을 위해 감독의 의도를 분석해 본다. 

 

(아래에 이어지는 글은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와 주관적 해석을 포함하고 있음.)

 

11살 소년 ‘마히토’가 죽은 어머니이자 엄마의 동생인 새어머니의 시골 저택에 있는 수상한 탑에서 겪는 모험을 그린 영화에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의 제국주의라는 역사적 배경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개인적인 성장사와 그의 동경, 그리고 사상이 녹아 있다.

 

무기와 아버지를 사랑한 현실 소년

 

주인공인 ‘마히토’는 미야자키 감독이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다. 전투기 부품을 만드는 군수공장을 운영하는 마히토의 아버지는 폭격으로 아내를 잃고 난 뒤, 아내의 동생인 ‘나츠코’와 재혼, 시골 처가의 저택으로 거처를 옮겨 새로운 공장을 운영한다.

전쟁의 패색이 짙어질수록 공장은 바쁘게 돌아가고 아버지는 생기가 넘친다. 영화 속에서 마히토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기꺼이 목숨까지 걸지만, 탑에 접근하거나 이세계(異世界)의 흐름을 바꿀 힘은 없는 한계를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1941년생인 미야자키의 아버지는 실제 가족이 운영하는 군수공장에서 일했던 인물이고, 전쟁을 겪으며 성장한 미야자키는 ‘하늘을 난다는 것’과 비행기에 대한 동경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전투기 조종석을 덮어씌우는 투명 부품인 ‘캐노피’를 보며 마히토와 아버지가 “근사하다”고 대화하는 장면은 전쟁에 대한 미화라는 비판을 받는다.

 

미야자키는 ‘반전’을 말하면서도 끊임 없이 영화에 전쟁 기계의 외적 아름다움과 비행에 대한 동경을 담아왔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붉은 돼지’를 거쳐, 제로센 전투기 개발자의 삶을 모티브로 한 전작 ‘바람이 분다’에선 감독의 열망을 대놓고 드러낸다.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의 산실인 지브리 스튜디오의 ‘지브리’가 이탈리아 정찰기 이름인 ‘기블리’(Ghibli)에서 따온 것이란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전투기도 무기를 만든 아버지도 미야자키 개인에게는 사랑의 대상이고, 엄마를 잃은 뒤 전학 간 학교에서 급우와 싸운 뒤 자해하고 새엄마에 대한 미움을 드러내는 소년의 ‘현실세계’는 모순적인 인간, 미야자키의 모습을 대변한다.

 

 

탑 속 판타지 세계… 애니메이터의 꿈과 일본의 이상

 

 

자석에 끌린 듯 임신한 채 사라진 새어머니 ‘나츠코’를 찾기 위해 ‘마히토’가 발길을 내딛는 ‘탑’은 관객을 본격적으로 혼란에 빠트린다. 이곳은 미야자키가 그려온 판타지의 세계로, 일본을 은유한다.

 

탑 속에 들어간 마히토는 펠리컨 떼에 떠밀려 불가침 영역인 돌무덤에 들어가고, 현실세계에서 집안일을 하는 노파였던 ‘키리코’가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나타나 돌무덤의 주인이 깨어나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돌무덤의 주인은 항상 지진의 위협이 도사리는 일본의 자연을 상징한다. 마히토가 무덤에 들어갔다 나온 뒤, 파도가 일었던 건 쓰나미의 전조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탑 속 ‘주인님’으로 불리는 마히토의 ‘외고조 할아버지(큰할아버지)’는 꼭대기의 궁전에 살며 돌과 계약을 맺고 있는 존재인데, 이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대를 이을 ‘핏줄’을 필요로 한다. 대지를 상징하는 돌과 계약을 맺은 신토의 제사장이자 이 땅의 ‘주인’은 일왕(천황)이라는 존재로 떠올리게 한다.

 

마히토를 공격하며 인간을 먹는 펠리컨과 앵무새는 정치가와 군벌 같은 살육의 전쟁을 벌이는 권력자들,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름 없는 그림자 인간들은 민중에 다름아니다.

 

군벌의 정점에 있는 ‘쇼군‘인 앵무새대왕은 ‘주인’의 후손인 마히토가 금기를 깨고 새어머니의 산실에 들어가자, 이를 빌미로 또 다른 후손인 ‘히미’(마히토의 어머니의 어린 시절)를 볼모로 붙잡은 후, 칼을 차고 자신의 주인을 찾아가 더 많은 권력을 요구한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한 탑 속 세계를 자신이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앵무새대왕의 오만함은 결국 일본의 패전과 같은 탑의 붕괴를 부른다.

 

작은 풍선처럼 생긴 ‘와라와라’들이 인간세계에서 태어나기 위해 하늘로 날아오르고, 이를 먹으려 하는 펠리컨을 막기 위해 ‘히미’는 불길을 내뿜는 신적 능력을 발휘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와라와라들이 함께 불탄다. 이는 민중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일부의 희생은 어쩔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전쟁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국가를 지키기 위한 자위권은 불가피하다는 의미, 또는 전쟁을 막기 위한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새 세대에 전하는 메시지

 

영화의 제목이자 마히토가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책,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언뜻 영화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미야자키가 영화에 담으려고 하는 속내이자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미야자키가 실제로 읽고 감명받았다고 알려진 이 책은 1937년 일본의 언론인이자 지식인이었던 요시노 겐자부로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삶의 지침서다.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 기운이 확산하는 가운데 자유주의자였던 요시노는 아직 청소년들에게는 희망이 남아 있다고 믿었고, 꿈을 가지고 정의롭게 사는 법을 책을 통해 전해주려 했다. 

 

‘마히토’는 요시노의 책을 읽고 난 뒤, 급우와 싸우다 다친 것처럼 자신의 머리를 돌로 쳐 자해하고 새어머니를 미워했던 행동을 반성하며 눈물을 흘린다. 마히토는 이를 통해 자신의 부도덕함을 깨닫고, 탑을 물려받아 새로운 주인이 되라는 외고조 할아버지의 요구를 자격이 없다며 거절한다.

 

미야자키는 전쟁 무기에 대한 동경과 동시에, 일본인으로서 도덕적 결함이 없는 지도자와 평화에 대한 열망을 영화에 담아내려 애쓴 자신의 모순적 행보를 이 영화를 통해 설명하려 한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소년의 안에 담긴 여러 가지,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물론 어디에도 보여줄 수 없는 추한 감정과 또 갈등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힘차게 넘어갈 수 있을 때, 드디어 세상의 문제들과 마주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미야자키가 그간 그려온 캐릭터의 닮은꼴이 대거 등장하는 영화는 결국 인간적인 ‘현실’과 이상으로서의 ‘탑’ 안에서 살아온 애니메이터의 인생을 녹여낸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다.

 

영화의 말미 외고조부는 마히토에게 자신의 세계가 끝나간다며 “너만의 탑을 쌓아라. 이 세계가 아름다운 세계가 될 지 추악한 세계가 될 지 전부 네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요시노가 그랬듯, 미야자키가 새로운 세대에 전하는 메시지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