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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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통령, 탄자니아 찾아 “식민 지배 시절 용서 구하고 싶다” 사과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탄자니아를 찾아 식민지배 시절 독일이 가한 잔학행위에 대해 “부끄럽다”며 사과했다. 전날 케냐에서 “깊은 후회”를 언급하면서도 분명한 사과는 하지 않은 찰스 3세 영국 국왕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탄자니아 남부 루부마주 송게아에 있는 박물관을 찾아 “독일인이 이곳에서 여러분 조상에게 저지른 일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다”며 “여기서 일어난 일은 우리가 공유하는 역사이고, 여러분 조상들의 역사이자 독일 조상들의 역사”라고 말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연합뉴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양국이 과거사의 공동 해결을 위해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이 이야기를 독일로 가져가서 더 많은 사람들이 탄자니아에서 있었던 일을 알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송게아는 1905∼1907년 발생한 마지마지 봉기의 중심지였다. 당시 수출용 면화 재배를 강요한 정책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이 지역 원주민들을 독일이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거의 30만명이 살해되거나 아사했다고 역사학자들은 추정한다. 탄자니아는 독일 제국의 마지막 군주였던 빌헬름 2세(1885∼1918년) 시절 르완다, 부룬디 및 모잠비크의 일부와 함께 독일-동아프리카 제국에 속해 있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3일 동안의 탄자니아 방문 기간 마지마지 봉기를 주도해 참수당한 것으로 알려진 송게아 음바노의 후손들도 만났다. 현재 탄자니아에서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는 음바노의 유해를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강조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사미아 수루후 탄자니아 대통령을 만나 양국 간 경제협력 확대, 식민주의 과거 공동 규명 등에 합의하며 “나에게는 우리가 이 어두운 역사의 장을 직시하고 규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약탈한 문화재를 반환할 채비도 갖췄다고 했다.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1일(현지시간) 탄자니아를 방문해 송게아 기념 공원에 있는 기념비에 화환을 놓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CNN 화면 캡처·뉴스1

탄자니아 역사학자 모하메드 사이드는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사과를 환영하면서도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BBC에 “그들(독일인)은 농장에 불을 지름으로써 식량이 고갈되고 싸울 수 없게 만들었다. 오늘날 같으면 법정에 끌려갈 만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또 이번 방문에서 배상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미국 CNN방송이 전했다.

 

앞서 독일은 2021년 110여년 만에 옛 식민지 나미비아에서의 종족학살을 공식적으로 자인하고 용서를 빌면서 나미비아 재건을 위해 30년간 11억유로(약 1조5800억원)를 내놓기로 한 바 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이번 사과 언급은 전날 찰스 3세가 케냐에서 식민 지배 시절 폭력 행위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밝힌 후 나왔다고 BBC는 전했다. 찰스 3세는 “케냐인들에게 저지른 혐오스럽고 정당화할 수 없는 폭력 행위”를 인정하며 “크나큰 슬픔과 유감”을 표명했으나, 공식 사과하지는 않았다. 과거사 사과 문제는 영국 군주가 아닌 내각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BBC는 덧붙였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