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가정폭력 벗어나려고”…아들과 ‘죽은 척’ 꾸미고 사라진 캐나다 작가, 유죄 일부 인정

캐나다 원주민 출신 여성 작가 돈 워커(49). 영국 BBC 방송 캡처

 

캐나다 유명 작가가 가정폭력에서 벗어나려고 아들과 자신을 죽은 척 꾸몄다가 법정에 섰다.

 

2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캐나다 원주민 출신 여성 작가 돈 워커(49)는 이날 열린 재판에서 9개 혐의 중 3개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워커는 10년 넘게 돈 듀몬트란 필명으로 활동하며 원주민 여성의 권익을 옹호한 작가로 명망이 높았다. 최근 작품 중 하나는(‘The Prairie Chicken Dance Tour’)는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 된 문학상으로 꼽히는 스티븐 리콕 메모리얼 메달 후보로 거론될 정도다.

 

그런데 지난해 7월24일(현지시간) 사스캐치완주에서 갑자기 아들과 함께 사라졌다. 그의 포드 자동차는 공원 한적한 곳에 세워졌고 그 옆에는 소지품들을 늘어져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이 죽음을 맞은 것처럼 보였다.

 

대대적인 수색을 벌인 경찰은 2주 뒤 미국 오리건주 오리건 시티에서 두 사람을 발견했다. 계속 신용카드를 쓰고 있어서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캐나다 사법기관은 워커를 9개 혐의로 기소했다. 양육권 명령을 어기고 자녀를 납치한 혐의, 위조 서류 보관 혐의, 여권 위조 혐의 등이다.

 

워커는 “자신은 무죄”라면서 “가정폭력에서 벗어나려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라고 항변했다.

 

이후 친구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무도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며 “흔적 없이 사라지려 했던 건 오래 동안 모든 걸 해본 다음 마지막으로 택한 절박한 시도였다”고 털어놨다.

 

이어 “아이를 위협에서 즉각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순진하게 믿었다”며 “‘원주민 남성’과 무관하게 (좀 더 근본적인 의미로서) ‘남성’에게 원주민 여성을 계속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과 싸우고 있다”고 호소했다.

 

검찰과 변호인은 양형 거래를 통해 재판장에게 “12개월 사회봉사명령을 착실히 이행한 뒤 18개월 동안 보호관찰 처분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워커는 현재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며 오는 20일부터 내년 1월까지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다른 작가들과 원주민 권익 활동가들은 “워커의 행동이 지나친 부분도 있지만 캐나다 사법제도에서 원주민이나 유색인종의 여성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런 목소리에 저명한 캐나다 여성 변호사 마리 헤네인은 자진해 워커 변호에 나섰다.

 

한편, 워커는 온타리오에 있는 퀸스 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수여받았다. 지난 총선에서 집권 자유당 의원 선거에 도전하기도 했다.

 

잠깐의 수감 생활을 했던 워커는 BBC와 인터뷰에서 “(캐나다 감옥에서) 자신 주변에 있던 여성 대부분이 원주민 출신이었고 변호인 접견권이나 의료 돌봄 등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목격했다”며 “단순 숫자를 넘어 그들의 격한 감정과 고통에 대해서는 제대로 의사 전달을 하지도 못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실제, 2021년 캐나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원주민 여성이 투옥될 확률은 비원주민 여성보다 무려 15배나 높다. 원주민 여성은 캐나다 전체 여성 인구의 5% 밖에는 안 되지만 지난해 연방 교도소에 수감 중인 전체 여성의 절반이 원주민 여성이었다.


정경인 온라인 뉴스 기자 jinori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