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정부, 2024년 상반기까지 공매도 금지한다 外 [한강로 경제브리핑]

정부가 6일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코스피·코스닥 등 한국 주식시장에서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외국인·기관이 공매도를 이용해 자신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여 있다는 개인투자자(개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이 공매도 금지의 결정적 사유로 작용했으며 윤석열 대통령도 불법 공매도 척결 의지를 강조했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공매도 전면금지 조치 자체가 이례적인 데다 외국인과 기관의 공매도 투자가 특혜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내 1400만명에 달하는 개인투자자 표심을 의식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일보는 6일자 지면에서 이같은 소식을 다루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권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자 금융지주들이 부랴부랴 상생안을 내놓고 있는 소식도 전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 금지…불법 공매도 적발이 계기

 

정부는 5일 오후 임시 금융위원회를 개최해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증권시장 공매도 금지조치’안을 의결했다. 공매도란 갖고 있지 않은 주식(재화)을 팔겠다고 계약한 뒤 일정시간 후 계약한 수량만큼을 사들여 결제하는 투자 기법으로, 해당 주가가 내려갈수록 이득을 본다. 

 

이번 결정은 한국 주식시장 역사에서 네 번째다. 정부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2011년 유럽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급락했을 때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 바 있다. 지금까지는 코스피200, 코스닥150에 속한 대형주 350개 종목을 대상으로 공매도가 허용되고 있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공동 브리핑에서 공매도 거래조건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하는 방안과 무차입 공매도 방지 방안 등 제도 개선방안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BNP파리바와 HSBC의 560억원대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을 계기로 10여개 글로벌 IB에 대한 전수조사도 실시한다. 

 

그동안 개인투자자들은 올해 주가 하락 원인 중 하나로 외국인·기관의 공매도를 들어 금지를 요구해 왔다. 5만명 이상의 개인투자자들이 국회에 ‘공매도 제도 개선 청원’을 내기도 했다.

 

금융당국 내에서는 윤석열정부 공약 중 하나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을 위해 공매도를 오히려 확대해야 한다는 점, 공매도가 주식시장의 과열현상을 진정시키는 장점이 있다는 점 등 때문에 금지에 신중한 분위기가 강했지만, 내년 상반기 총선을 앞둔 상황임을 고려해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으로 분석된다. 

 

대통령실은 “자산시장 내 불법 공매도와 공매도를 이용한 시장 교란 행위는 반드시 뿌리 뽑겠다는 각오”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은 (불법 공매도 관련) 공약 이행에 있어 한치의 부족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이 불법 공매도 세력을 자산 시장의 심각한 병폐로 인식하고 있고, 불법 공매도 전수조사 결정 역시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이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정부는 공매도 금지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으로 최근 적발된 글로벌 IB들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사례를 들었다. 불법 공매도로 인해 증권시장의 공정한 가격 형성이 방해돼 시장 신뢰를 저하시켰다는 것이다. 불법 공매도 근절을 위해 글로벌 IB 전수조사 등의 대책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이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 전면 금지 및 전향적인 공매도 제도개선 추진을 밝힌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뉴스1

금융위원회는 이날 공매도 금지 발표 자료에서 지난달 적발된 BNP파리바와 HSBC의 560억원대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금지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처벌 강화에도 외국인·기관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이 반복되면서 국내 주식시장의 공정한 가격 형성을 방해할 우려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질의 응답에서도 “공매도 금지 제도가 나오게 된 이유는 한국의 어떤 특이한 상황 때문”이라고 했다. 

 

금융위를 이를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주가 변동성이 불법 공매도와 직접적으로 연관됐다는 데이터가 있느냐’는 질문에 “직관적으로,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불법 공매도가 없을 때보다는 (있을 때) 가격 변동이 있지 않겠느냐“며 “객관적으로 데이터 분석은 아직까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매도를 내년 상반기까지 금지하면서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차전지 관련주식이 주목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코스피시장에서 공매도 거래대금 1·2위는 포스코퓨처엠(555억원)과 LG에너지솔루션(433억원)으로 모두 이차전지 관련주였다. 코스닥 시장도 마찬가지로 지난 3일 기준 공매도 거래대금이 가장 많은 종목 1위는 에코프로비엠(737억원)이었고 그 뒤로 에코프로(649억원), 엘엔에프(242억원)였다. 1∼3위가 모두 이차전지 관련주였다.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이사는 통화에서 “수급만으로 보면 특히 코스닥에 영향이 갈 것으로 보인다. 개인들의 심리가 일단 살아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기적으로 볼 때는 예단하기 어렵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는 시장이 반등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준석·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난 2월 펴낸 ‘공매도 규제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 시행 이후 시장의 가격효율성은 저하됐고 변동성은 증가했으며 시장거래는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에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 기준 중 하나로 공매도 확대를 드는 만큼 이번 조치로 당분간 MSCI 편입 가능성은 작아질 것으로 보인다. MSCI 지수는 외국계 투자자들의 주식·채권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내 자본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번 조치가 윤석열정부가 출범 때부터 강조해 온 ‘자본시장 선진화’에 역행하는 조치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주부, 회사원, 소상공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 은행권 비판에 금융지주들 부랴부랴 상생안 

 

윤 대통령이 ‘은행은 일종의 독과점이라 갑질을 많이 한다’, ‘소상공인이 은행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는 등 은행권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자 금융지주들이 부랴부랴 상생안을 내놓고 있다.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밀착형 지원안이 핵심이다. 그러면서도 내부에서는 ‘부적절한 비판’이라는 불만도 나온다.

 

5일 우리금융지주는 “지난 3일 임종룡 회장 주재로 전 계열사 대표들과 상생금융 긴급대책 회의를 가진 이후, 각 계열사는 주말에도 출근해 상생금융 현안과 관련한 논의를 이어 갔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민과 약속한 상생금융 추진은 꼭 지켜야 한다’는 임 회장의 주문에 따라 현재까지의 상생금융 이행 상황 등을 점검했다고 설명했다. 

 

주요 계열사인 우리은행은 이번에 상생금융 태스크포스팀(TFT)을 발족해 기존 상생금융부에 힘을 더욱 실어 준다는 방침이다. 소상공인·자영업자·청년 등 금융 취약층을 대상으로 한 상생금융을 핵심으로, 저금리 대환대출 공급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 검토되고 있다. 우리카드, 우리금융저축은행, 우리금융캐피탈 등도 소상공인 및 취약차주 지원안을 확대하고 특화 상품을 추가로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계열사별 상생금융 확대 방안의 실효성을 면밀히 검토한 뒤 공동 발표할 예정”이라며 “속도만큼 (상생금융안의) 내실을 기하자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앞선 지난 3일 하나은행은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1000억원 규모 지원 대책을 마련했다. 약 11만명을 대상으로 665억원 규모의 ‘이자 캐시백’ 프로그램을 추가로 실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정 기간 전월에 납부한 이자를 매달 돌려주는 방식이다. 이와 함께 서민금융 공급 확대, 에너지·생활비·통신비 지원, 경영 컨설팅 지원 등을 다음달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KB금융그룹, 신한금융그룹 등도 주말 회의를 거쳐 주요 상생 방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포함해 금융소비자들과의 상생을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도 “(추가 상생금융 방안과 관련해)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은행권 상생 패키지나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오는 16일 예정된 금융 당국과 금융지주 회장 간 간담회에서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각 금융지주가 간담회를 앞두고 구체적인 상생안 준비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금융권을 향한 날 선 비판에 금융지주들이 앞다퉈 상생금융안을 만들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매년 1조원 이상을 사회공헌사업에 지출하고, 올해 초 10조원 규모의 취약층 지원안을 내놨음에도 정기적으로 ‘은행 때리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의 인·허가 산업인 은행에 대해 ‘독과점’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