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고통/한대수/북하우스/3만3000원
장발을 치렁치렁 늘린 채 기타를 치며 특유의 탁성(濁聲)으로 ‘물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를 부르던 한대수. 1960, 70년대 한국 음악계의 독보적인, ‘한국 모던록의 창시자’ ‘한국 포크록의 대부’로 불리며 중장년 팬에게는 낯익은 가수다.
그가 세상을 여행하며 40여 년 동안 찍은 필름 사진집을 냈다. 1960년대부터 2007년까지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 지금까지 공개한 적 없는 미공개 희귀 흑백·컬러 사진 100여 점을 수록했다.
“한대수가 사진을?” 하는 이도 있을 수 있으나 한대수는 알고 보면 사진 전문가이자 사진작가다. 요즘 말로 하면 ‘부캐’ 즉 제2의 직업이다. 그는 한국에서 자신의 곡이 금지되자 뉴욕으로 건너가 뉴욕의 사진학교를 다녔고 스튜디오 사진작가로도 활동했다. 국내 언론사(영자신문) 사진 기자로 일한 적도 있다. 이미 사진집 두권을 냈고 사진전도 몇 차례 연 바 있다. 가수로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사진을 찍어왔다.
사진집 제목은 ‘삶이라는 고통’이다. 그의 삶은 늘 고독하고 우울했다. 3년 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제 삶이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극적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 서울과 부산에서 30년, 뉴욕에서 40년을 살았다. 남부러울 게 없는 부유한 집에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신학대 초대 학장이었고, 아버지는 핵물리학자였다. 그런데 유년시절 미국에 유학 간 아버지가 돌연 실종됐다. 어머니는 재가했다. 갑자기 고아 처지가 돼 10살 때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선 저택에 혼자 살았다. “저 넓은 정원 뒤를 잇는 장미꽃밭/ 높고 긴 벽돌담의 저택을 두르고/ 앞문에는 대리석과 금빛 찬란도 하지만/ 거대함과 위대함을 자랑하는 그 집의/ 이층 방 한구석엔 홀로 앉은 소녀/ 아아, 슬픈 옥이여/ 아아, 슬픈 옥이여.” 당시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쓴 ‘옥의 슬픔’이란 곡이다. 옥이가 바로 저”라고 했다. 외로움, 고통, 비극 같은 것들이 자신을 음악가로 만들었고, 사진을 찍게 했다는 것이다.
한대수는 “필름 이미지는 아웃라인이 매끄럽지 않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것과는 차이가 크다. 때로는 희미하고, 때로는 포커스가 안 맞더라도 내 인생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보여드린다. 맥주 한잔 마시고 즐기시길”이라며 사진집 출간 소회를 밝혔다.
늘 ‘카메라는 목의 십자가’고 말하는 그는 ”고희를 훌쩍 넘겨 ‘사진을 정리해야지’ 했던 숙원을 이룬 작품이다. 노래이든 사진이든 창작의 궁극적인 주제는 ‘사랑과 평화’” 라고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