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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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헌신한 순간이 후회돼”… 연일 부상과의 혈투에도 미흡한 지원 [사사건건]

‘쾅!’

 

건물을 뒤흔들 정도의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지난 9월 부산광역시 동구의 한 목욕탕에서 발생한 화재·폭발 현장에서 남아있는 불길을 살피던 소방관 강모씨는 건물 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을 정면에서 받았다. 폭발과 함께 강모씨의 전신은 1m 정도를 날아 왼쪽 어깨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폭발 충격으로 강씨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지난 9월 부산광역시 동구의 한 목욕탕에서 발생한 화재·폭발 현장에서 강모 소방관은 전신의 30% 부위에 달하는 화상을 입어 홀로 생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강모 소방관 제공.

“대장님, 대장님!”

 

강씨는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부하 직원의 간절한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지만 이내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고 한다. 이 사고로 그는 왼쪽 갈비뼈 3대가 부러지고, 양팔·다리부터 시작해 얼굴까지 2도 이상의 화상을 입었다. 사고 후 두 달여가 지났지만, 강씨는 이제서야 두 발로 온전히 걸을 수 있다. 여전히 가족의 병간호 없이는 옷을 갈아입을 수도, 개운히 씻기도 어려운 상태다.

 

그런 강씨에게 가장 큰 걱정은 간병비다. 강씨는 체표 면적(신체 부위 중 화상 부위의 비율)의 30%에 달하는 범위의 화상을 입었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의 공무원 재해 보상 기준에 따르면 화상 피해자의 경우 화상의 범위가 체표 면적의 35% 이상이어야 간병료를 지원받을 수 있어서다. 인사혁신처(인사처)에 따르면 공무원 재해 보상 기준에는 35% 화상 범위 기준을 포함해 총 10가지 기준이 있지만, 두 손가락을 잃거나 두 눈이 실명되는 등 요건이 까다롭다. 강씨는 “화상 범위를 단순히 35%로 수치화시켜 제한하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며 “골절 등 다른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간병비 액수가 충분치 않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14년째 동결된 간병비…이중고 겪는 소방관들

 

9일 ‘소방의 날’은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국민들을 화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정 기념일이다. 1963년을 시작으로 ‘119’를 상징하는 11월 9일 ‘소방의날’에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소방관들을 향해 감사의 인사가 쏟아진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간병비와 공상 인정 범위 제한으로 소방관들은 신체·정신적 고통부터 경제적 어려움까지 이중고를 토로한다. 연일 화마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소방관들의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대해 국가적 지원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사처가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소방공무원의 공무상 요양 심사 신청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최근 3년간은 1000건을 웃돌았다. 지난해 1201건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만 858건이 신청돼 연말에는 1000건이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사처에 따르면 현장에서 부상을 입고 입원 치료를 받는 소방관들에 대해선 공무원 재해보상법에 따라 간병비가 지급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간호비 지급 기준을 중증 정도에 따라 간병 1등급‧2등급‧3등급으로 나눈다. 거동이 불가능한 수준의 1등급에 대해 전문 간병인을 쓸 경우엔 일일 6만7140원, 가족·기타 간병인을 쓸 경우엔 6만1750원이 지급된다. 간병인 하루 일당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간병인협회 요금표를 보면, 24시간 전문 간병인을 고용할 경우 일반 간병비는 12만원부터 시작해 거동이 어려운 경우에는 추가 금액이 더 붙는다.

 

2021년 충남 소방에서 근무 중 화재 진압 현장에서 두손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최모씨는 현업에 복귀하지 못하고 지속해서 전문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중증 화상으로 간병 1등급을 받은 최씨는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하루 6만7000여원을 지급받았지만, 현실적인 간병비는 1일 15만원 이상 발생했다. 결국 최씨는 간병비를 위해 300만원 이상을 자부담으로 지불했다. 최씨는 “‘영예로운 제복상’의 상금을 받았지만 미봉책”이라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나 자신을 헌신한 순간을 지금은 후회한다”고 전했다.

 

◆“국가를 위해 일하다 입은 얼굴 화상에 ‘미용’이라니”

 

화상 피해에 대해 지원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사처에서 고시한 특수요양급여비용 산정기준에 따르면, 공상공무원이 화상으로 인해 관절기능장애·각막손상·청력손실 등을 유발하는 흉터를 입거나 안면기형 등 신체기능에 장해가 있는 경우 흉터제거 수술이 횟수의 제한 없이 인정된다. 특별히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어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인정되지만, 단순 미용을 위한 성형수술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고시돼 있다.

 

화상 흉터가 심각한 장해를 초래하거나 ‘타인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식의 모호한 상황을 제외하고, 얼굴 등에 입은 화상 흉터를 제거하려 하면 미용 목적으로 치부될 수 있어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이 따른다. 부산 목욕탕 폭발 사고로 얼굴에도 화상을 입은 강씨는 얼마 전 얼굴 피부 재생을 위해 시술을 알아봤지만,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레이저 시술의 경우 ‘미용’ 목적으로 분류돼 지원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강씨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을 하다가 입은 상처인데 왜 ‘미용’이라고 말하는지 억울하다”고 말했다.

 

같은 사고로 목과 팔에 2도 화상을 입은 정모 소방관도 화상의 후유증을 치료하는 과정 중 비급여 제한 의약품이 너무 많아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정씨는 “몇 억원이 필요하다는 게 아니다”라며 “오직 온전한 상태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단순한 생각뿐이다”라고 전했다.

 

8일 공노총 소방공무원노조원들이 세종시 소방청 앞에서 ‘제 61주년 소방의날 공노총 소방노조 정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공노총 소방노조 제공.

◆죄책감과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의 늪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

 

“내가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14년차 소방관 김길중(41)씨는 아직도 수년 전 사고들이 떠오른다. 김씨는 현재 화재진압 파트에서 일하지만, 구급 파트에서 일할 당시 본 시신들과 악취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뒤이어 따라오는 건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이다.

 

하루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신고가 들어 왔다. 실종 현장을 20분여 수색을 하던 중 유사한 나이 대의 여성이 대형 트럭에 치였다는 신고를 들었다. 사라졌다는 이전 신고의 여성과 동일 인물이었다. 사고 현장 2m 밖에서도 피와 내장 냄새가 진동했다. 체내에서 흘러나온 장기들이 도로를 채워 장기부터 수습하고, 김씨는 시신을 병원으로 옮겼다. ‘조금 더 빨리 찾았다면 어땠을까.’ 안타까움이 차올랐다.

 

또 다른 날에는 환자를 구급차에 실어 병원으로 옮기고 있는데, 어린 아이가 심정지가 왔다는 무전이 쉬지 않고 울렸다. 환자를 이송하면서도 ‘빨리 저 현장으로도 가야 하는데’ 조급함이 차올랐다. 어린 아이들의 소생률이 더 높다는 것을 아는 김씨는 살리지 못한 어린 아이를 만났을 때 가장 암담하고 말한다. 10년이 지나도 그 순간들은 잊히지 않는다.

 

김씨와 같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소방관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공개된 ‘2022년 소방공무원 마음건강 설문조사’에 따르면 PTSD, 우울증, 수면 장애 등 고위험군 비율은 증가세를 보였다. 세부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 5만4000여명 중 ▲PTSD 4364명(8.1%) ▲우울 4129명(7.6%) ▲수면장애 1만6108명(29.8%)으로 나타났다. 2021년 설문과 비교했을 때 ▲PTSD 2.4% ▲우울증 3.2% ▲수면장애 7%씩 증가했다. ‘극단적 선택 생각을 1회 이상 했다’는 응답도 10명 중 1명꼴이었다.

 

하지만 소방관들은 PTSD를 공상재해로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 인사처에 따르면 PTSD와 업무 간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뚜렷한 경우에만 인정되어서다. 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이 필수적이라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 등은 인정되기 어렵기도 하다.

 

◆“국민 안전확보를 위해 제도 개선할 때”

 

이날 소방공무원노동조합(소방노조)은 소방청 앞에서 ‘제 61주년 소방의날 공노총 소방노조 정례 기자회견‘을 열고 위험직무 공무원을 위한 별도 재해보상 제도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소방노조 이창석 사무총장은 “소방공무원 대상 간호비, 성형수술비, 상급병실료 등 현실적 지원이 미흡하고, 정신적 질환에 대한 기준도 완활될 필요가 있다”며 “공무상 재해 시 현장으로 복귀될 수 있을 수준으로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지원 방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외에도 소방노조는 ‘소방공무원 안전확보, 국민의 안전확보’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현장지휘 역량 강화를 위한 제도 마련”, “중대재해처벌법 국가 기관 책임 강화”, “소방 국가직화에 맞춰 인사와 예산 국가직화” 등을 요청했다.

 

권인숙 의원은 “위험한 상황에서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헌신하고 계신 소방관들에 대한 국가 지원이 여전히 부족하다”며 “현실적 특성을 반영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나현 기자 lapiz@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