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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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업 승계 막는 세계 최악의 상속세 전면 수술해야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10일 “상속세 체제를 한 번 건드릴 때가 됐다”고 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상속세 최고세율을 낮추거나, 상속세 대신 상속인이 재산을 매각하는 시점에 세금을 물리는 자본이득세를 도입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한국의 상속세는 과도한 세율 탓에 “기업을 위협할 정도”(영국 파이낸셜타임스)로 징벌적 성격이 강해 숱한 부작용을 양산한 지 오래다. 전 세계에서 가혹하기로 악명이 높다.

우리나라 상속세는 23년째 최고세율 50%에다 경영권 승계 때 20% 할증까지 더해져 실제 세율이 60%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OECD 평균은 26%이고 캐나다·호주·스웨덴·노르웨이 등 14개국은 아예 상속세가 없다. 상속세의 원조 격인 영국마저 단계적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니 국내 기업들은 상속세 탓에 가업승계가 막히거나 경영권을 위협받기 일쑤다. 삼성 대주주일가는 2020년 이건희 회장 별세 이후 12조원의 상속세가 부과됐는데 대출과 주식매각을 통해 5년에 걸쳐 분납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넥슨그룹 창업주 김정주 회장 사망으로 막대한 상속세를 감당할 수 없는 유족이 넥슨 지주회사(NXC) 주식으로 현물 납세해 정부가 NXC의 2대 주주로 부상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알짜기업인 한미약품과 한샘, 락앤락 등은 상속세 부담에 아예 회사를 해외사모펀드에 넘기기도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여당의 소극적 대응은 실망스럽다. 국민의힘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상속세 개편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기업 승계를 부당한 부의 대물림으로 바라보는 국민 정서를 의식한 듯하다. 여당은 대신 주식양도세 완화에 더 공을 들인다. 올 연말까지 양도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현재 종목당 10억원(또는 1∼4%)에서 50억원 또는 100억원으로 상향한다고 한다. 연말마다 쏟아지는 큰손들의 매물 폭탄을 막아 증시안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공매도 전면금지에 이어 내년 4월 총선 일반투자자의 표심을 노린 조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세제 정책이 선심성 포퓰리즘에 따라 춤을 추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발등의 불은 불합리한 상속 세제를 글로벌 표준에 맞춰 고치는 일이다. 정부는 폐지가 힘들다면 상속인이 물려받은 재산만큼 세금을 내는 유산 취득세로 바꾸고 세율도 낮춰야 할 것이다. 야당도 ‘부자 감세’ 공세로 국민을 현혹할 게 아니라 기업, 국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세제개편을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