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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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기, 잠시 쉬게 둡시다

우리 곁에는 24시간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친구가 있다.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자 국민 생활 필수 요소인 이 친구는 밤낮으로 세상을 밝히며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한다. 24시간 대한민국을 밝히기 위해 일하는 ‘전기’, 하지만 전기도 때로는 좀 쉬어야 하지 않을까?

정부는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으로 근로자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 있고, 국민들의 인식도 개선되어 가고 있다. 그에 따라 전기공사 방법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하동명 세명대 교수·보건안전공학

그렇다면 전기공사 중 가장 안전한 작업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전기공급을 잠시 중단한 후 시행하는 휴전(休電)작업이다. 휴전작업이란 감전사고의 원인이 되는 전기 공급을 중단하여 작업자와 재해 요인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다. 물론 전기 공급 중단으로 국민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컴퓨터를 사용할 수도 없고, 텔레비전도 볼 수 없고, 에어컨·히터도 사용할 수 없다. 이런 불편 때문에 전력 공급을 중단하고 작업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잠시만 전기 없는 생활을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휴전작업이 불편함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휴전작업을 통한 설비의 보강으로 불시에 정전될 수 있는 개연성을 줄여 안전하고 지속적인 전기 사용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세계적으로 전기 품질을 관리하는 SAIDI(System Average Interruption Duration Index)라는 지표가 있다. 이 지표는 가구당 정전 시간을 나타내며 수치가 적을수록 가구당 정전을 경험하는 시간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전은 9.05분으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정전 시간을 유지하면서 세계적인 전기 품질을 자랑한다.

그렇다면 해외 선진국들은 어떨까? 우리와 달리 미국·유럽의 경우는 가구당 휴전 시간이 평균 약 40분으로 우리나라보다 4∼5배 긴 시간 동안 국민들이 정전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이처럼 주요 선진국의 경우, 휴전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어 우리나라보다 정전 시간이 길 수밖에 없다. 이들 나라에서는 국민 편의를 위해 정전 시간이 적은 고품질 전기를 공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근로자의 생명을 지키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휴전작업을 시행하고 있다. 작업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휴전작업으로 인한 잠깐 동안의 불편함은 감수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범국민적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발전된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도 이제는 효율보다는 안전에 가치를 두고 때로는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할 것 같다.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위해 우리의 편리함을 잠시 내려놓는 여유가 필요하다. 모두가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휴전작업을 적극 확대해 나가야 한다. 전기, 이제 가끔은 잠시 쉬게 하자.


하동명 세명대 교수·보건안전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