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동떨어진 방문간호 역할을 재설정하려면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직역 업무 범위를 우선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를 구분해야 방문간호 현장에서도 환자 상태에 따라 간호사 자격과 역할을 규정할 수 있어서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1962년 제정된 뒤 거의 바뀌지 않은 의료법은 의사 업무를 1줄, 간호사 업무는 4줄로 규정하고 있다. 의료법 제12조는 ‘의료행위’를 의료인이 하는 의료·조산·간호 등 의료기술의 시행으로 모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제27조)와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해야 한다’(제33조)는 조항도 방문간호사가 욕창 소독도 못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의료계 각 직역 업무 분장이 모호한 탓에 방문간호 주체가 누구냐는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의사·간호사 역할에 대한 유권해석이 나와야 해 현장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올해 혈압과 혈당, 콜레스테롤 측정을 의사 지도 없이 간호사가 단독으로 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기도 했다. 현장에서 만난 방문간호사들은 모두 “예전부터 (간호사들이) 해왔던 것들”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수진 이화여대 교수(간호학)는 “일반인도 하던 걸 지금까지 불허했다는 게 말이 안 됐다”고 말했다.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 문제는 올해 상반기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간호법 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을 당시부터 논란이 됐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의사·간호조무사단체 등은 의사 수가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새로운 의료 화두인 지역돌봄을 위해서는 직역 간 업무 범위부터 정리해야 간호사들의 불법진료행위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임상현장에서도 의사가 간호사에게 업무를 위임하고 있는데 현행 의료법 체계에선 위임이 불가능하다”며 “어느 범위까지 위임할 수 있는지 법적으로 정리하지 않고 방문간호 역할을 정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복합질환이 없는 노인과 침습적 장치를 가진 환자 등 전문간호가 필요한지에 따라 간호사 자격도 달라질 수 있다. 신 교수는 “처치 행위는 환자 상태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며 “임상판단 등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면 가정전문간호사가 맡는 등 방문간호 범위가 체계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낡은 의료법을 뜯어고치기 위한 전문가 논의기구인 ‘의료법 체계 연구회’를 발족했다. 연구회에 참가하는 의료와 간호·요양, 법률 전문가 9명은 의료법 체계 한계를 분석해 개편 방향을 담은 권고문을 낼 예정이다. 선진화된 의료·요양·돌봄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일본 사례를 시작으로 해외 사례를 통해 △의료기관 밖 의료서비스 제공 근거 체계화 △의료행위와 직역별 업무 범위 규정 체계 개선 △의료법과 다른 법률과 관계 재설정 방향 등을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