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신부님과 신랑님, 양가 친척 가운데 꼭 한소리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왜 멀쩡한 가을 놔두고 겨울에 결혼하냐고 말입니다.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겨울은 12월에 시작합니다. 심지어 1980년대에도 겨울은 11월 27일 이후에야 시작됐습니다. 그러니 두 분은 가을의 신부, 신랑입니다.
혹시 결혼 당일 겨울만큼 추웠을 수는 있습니다. 이때 누군가는 말하겠지요. “이 추운 날 결혼을 했으니 앞으로 너희 인생에는 따뜻한 날만 계속될 거야.” 속지 마십시오. 이게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두 분은 하늘이 맺어준 운명의 짝일까요? 천만에요. 모든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137억년 전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할 때 후에 생명의 탄생마저 예정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21억년 전 진핵생물이 등장하면서 유성생식이라는 방식이 확정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25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화산재 위를 두 발로 걸을 때, 언젠가는 아프리카 바깥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걸어다닐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다 거의 비슷한 시기와 공간에서 두 분이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하필 두 분이 만났습니다. 두 분의 만남은 우주가 정한 운명이 아니라 순전히 우연입니다. (노사연의 노래에 넘어가지 마세요.)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운명처럼 느낄 만큼 서로에게 잘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이란 결국 호르몬의 작용입니다. 세로토닌의 효과는 기껏해야 3년입니다. 두 분의 눈에 씌인 콩깍지가 곧 벗겨집니다. 이때부터는 의리로 살아야 합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삽니다. 의리는 복종으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서로를 용납하는 것으로부터 스며나오는 것이죠.
무엇보다 두 분이 서로에게 시간과 공간, 그리고 돈을 허락하기를 권합니다. 하루 종일 같이 붙어 있지 마십시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즐기기 바랍니다. 이때 꼭 필요한 게 돈입니다. 시간과 공간은 어떻게 양해가 되는데 돈은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니 일단 열심히 일해서 많이 버세요. 그래야 편히 각자 쓸 돈이 생깁니다.
신랑은 잘 들으세요. 뭘 하고 싶을 때, 어디에 가고 싶을 때, 뭔가를 사고 싶을 때, 아내에게 허락받으려 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갖은 애를 써도 어차피 잘 허락하지 않습니다. 혹시 허락받는다고 하더라도 이때 써야 하는 노력과 시간, 에너지가 너무 큽니다. 허락받는 것은 포기하십시오. 그냥 용서를 받으세요. 아내는 허락은 잘 안 해줘도 용서는 잘 해줍디다. 사랑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용서합니다.
사랑은 항상 아슬아슬합니다. 그 스릴을 즐기십시오. 스릴을 즐기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긴장입니다. 결혼 생활은 긴장의 연속입니다. 몸이 하나가 된다고 해서 마음까지 하나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연애할 때보다 긴장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두 분의 삶은 거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마지막 한 방은 두 분 자신이 날렸겠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 가족과 사회가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원래 그런 것입니다. 앞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자원을 다 쏟습니다. 새와 산짐승도 그러하고 하다못해 벌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거든요.
두 분의 자원도 다음 세대로 전달되면 됩니다. 지구 생태계가 두 분에게 원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바로 번식이죠. 두 분의 건강한 두 유전자가 짝을 이루어 새로운 조합의 건강한 후손이 태어난다는 것은 지구 생태계에 커다란 복입니다. 두 분에게서 건강한 후손이 많이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두 분에게서 새로운 우연의 기회가 많이 만들어지기 바랍니다.
칼리 지브란은 신전의 두 기둥처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신전의 두 기둥은 나란히 서 있습니다. 그 사이로는 자유로운 바람이 오고 갑니다. 기둥이 가까워지다 못해 하나로 포개진다면 신전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뜨겁게 사랑하되 두 사람 사이에는 바람이 통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각자에게 시간과 공간을 허락하시기 바랍니다. 11월에 결혼하는 두 분은 가을의 신부와 신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