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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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당직수당 좀 올려주세요”

군, 초급간부 근무여건 개선 약속
보여주기 쇼에 희망고문 계속돼
간부들 비판과 하소연 이어져 신
국방, 장관직 걸고 해결해야

국회가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 돌입했다. 656조9000억원 규모다. 예산안 처리의 법정 시한은 다음 달 2일. 여야 간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에 한 푼이라도 더 따내려는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나라 곳간을 책임진 예산당국 간 신경전이 팽팽하다. 국방부도 비켜갈 수 없다.

이상희 전 장관은 2008년 2월 이명박정부의 첫 국방장관을 지냈다. 전략가인데도 저돌적이며 고집불통 이미지가 강했다. 2009년 8월 무렵이다. 이듬해 국방예산에서 전력 증강과 직결되는 방위력 개선 부문 예산이 대폭 삭감되자 그는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서신을 보내 항의했다. “국방예산 증가율은 경제논리와 재정회계 논리를 초월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구구절절한 서신 내용은 절박함이 가득했다. 그런데 이 일은 당시 실세였던 장수만 국방차관이 이 장관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채 경제논리를 내세워 국방비 삭감을 주장하는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하는 ‘하극상 논란’으로 번졌다. 결국 이 장관은 그 책임을 지고 다음달 물러났다. 안티 세력이 많았는데 이상하리만치 군에선 별 말이 없었다. 오히려 그를 지지하며 ‘용기 있는’ 장관으로 꼽았다.

박병진 논설위원

올 3월 병사 봉급은 올려주는데 군 초급간부에 대한 처우는 제자리걸음이라는 불만이 가득했을 때다. 윤석열정부 첫 국방부 장관이던 이종섭 전 장관은 부랴부랴 군별 초급간부 등 60여명을 불러모아 간담회를 가지고는 불만을 다독였다. 7월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주관해서도 “초급간부 근무여건 개선과 사기 고양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바지사장’으로 불리며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데 소극적이던 그도 술렁이는 군심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 국방부는 초급간부 처우 개선을 위한 6개 분야 26개 과제를 내걸었다.

초급간부들이 가장 반긴 건 턱없이 낮게 책정됐던 당직수당 조정이다. 간부 복지 개선의 상징과 다름없다. 당직근무는 군인들이 가장 기피한다. 육체는 물론 정신적 부담이 적잖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에 따른 책임을 지고 군복을 벗기도 한다. 초급간부의 경우 이런 당직수당이 평일(14시간) 1만원, 휴일(24시간) 2만원씩 지급된다. 국방부 일반 공무원들은 평일·휴일 구분 없이 3만원이다. 누구라도 차별을 느끼지 않겠나. 근무 강도에 있어서도 사무실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는 일반 공무원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전방부대는 더욱 열악하다. 이 전 장관은 그런 초급간부 당직수당을 평일 3만원, 휴일 6만원 수준으로 올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지금도 국방부는 당직 근무비 인상을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라는 얘길 반복한다.

하지만 기재부로 넘어간 내년도 국방예산안 가운데 병사 급여 인상액 1조원은 반영된 반면, 초급간부 당직수당 인상액 1000억원은 빠졌다. 지난달 자리를 물러날 때까지 이 전 장관은 일언반구조차 없었다. 그가 기재부 장관을 만났다거나, 서신을 보내 항의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진급하는 장성들에게 초급간부 복무여건 개선에 대한 전향적 관심과 노력을 당부했고, 지난 1일 신원식 국방장관은 장병들에게 보낸 첫 지휘서신에서 “초급간부는 안보의 핵심”이라며 부추겼다. 묻는다. 왜 보여주기 쇼에 희망고문만 계속하는가. 예산안이 확정되고 나면 어떻게 주워담을 건가.

“14시간 일하고 1만원 받는 곳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 군 간부님들밖에 없다. 시급 700원 수준이고, 경찰이나 소방관 같은 출동수당도 따로 없다. 국방 수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하등한 일로 취급받고 있다. 어떤 노동자가, 어떤 약자가 이런 처우를 받는다는 말인가.” 초급간부 당직수당 인상을 위해 지난 14일부터 국회 앞에서 단식 철야농성 중인 군장병권익보호센터 안정근 센터장의 주장이다. 온라인 군 커뮤니티에서는 “더 이상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 “전역이 답”이라는 등의 초급간부들 비판과 하소연이 쏟아진다.

이쯤 되면 초급간부 당직수당 인상에 신 장관이 직을 걸어야 할 듯싶다. 정치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가뜩이나 그는 국회에서 주식거래 메시지를 확인하다 사과까지 한 마당 아닌가. 실추된 장관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그렇다.


박병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