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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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산업스파이 10년 사이 최다 적발, ‘경제 간첩죄’ 적용해야

9개월 새 기술 해외유출 21건 적발
범죄 부추기는 솜방망이 처벌 심각
기술안보 전담할 컨트롤타워 시급

산업스파이 범죄가 갈수록 극성을 부리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는 올 2월부터 10월까지 산업기술을 해외로 유출한 사건 21건을 적발해 검찰에 넘겼다고 그제 발표했다. 적발 건수는 최근 10년 사이 가장 많고 지난해(12건)보다 75% 증가했다. 유출처로는 중국이 가장 많고, 디스플레이·반도체·로봇·방산 등 국가핵심기술이 대거 포함됐다. 이러다 첨단산업이 거덜나고 국가안보마저 흔들리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심각한 건 수법이 대담하고 규모도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국내 대형병원 연구소 중국인 연구원은 의료로봇 기술 관련 파일을 1만건 가까이 중국으로 보낸 사실이 들통났는데 유출 기술의 가치가 약 6000억원에 이른다. 국내 대기업 공장자동화 솔루션을 유출하고 액정표시장치(LCD) 공정기술을 빼돌리려 했던 협력업체 대표 등 5명도 붙잡혔다. 지난 5년간 국가정보원이 적발한 기술 유출 사건은 93건에, 피해액이 25조원에 이른다.

기술탈취가 활개를 치는 건 산업스파이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는 탓이다. 지난 6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 자료를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구속됐던 삼성전자 전 임원 최모씨가 얼마 전 보석금 5000만원을 내고 풀려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최씨는 대만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중국 시안에 복제공장을 세우려 했고 국내 반도체 전문 인력 200명 이상을 영입하기도 했다. 검찰은 최씨 범행으로 국내 기업이 최소 3000억원의 피해를 봤으며 향후 피해 금액이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특허청 기술경찰이 2019년 3월부터 올 10월까지 검찰에 넘긴 산업재산권 침해사범 1310명 중 6개월 이상 징역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최근 5년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을 봐도 1심에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6.2%다. 기본 징역형이 1년∼3년6개월에 불과하고 감경사유도 많은 탓이다.

이제 특단의 대응책이 필요한 때다. 기술 유출은 국가경쟁력의 근간이자 안보자산인 전략기술을 훔쳐 해외로 팔아넘기는 중대범죄이자 매국적 행위다. 미국은 ‘경제 스파이법’에 따라 기술유출범에게 징역 33년9개월형까지 구형하고 대만도 기술 유출에 간첩죄를 적용해 강력 처벌한다. 법원은 기술탈취에 대한 양형 기준을 대폭 높이고 국회도 간첩죄로 처벌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선진국들처럼 기술안보 전담 컨트롤타워를 세우는 일도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