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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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드는 이스라엘'…하마스공격 후 20년치 총기면허 신청 몰려

"접수 건수 23만 6000건 넘어"…극우파 득세 우려도
이 정부, 민간 전투원에 총기 배포…시민들에게도 무장 장려
두려움 떠는 서안 팔 주민들…"국가가 폭력 조장" 비판도

이스라엘인들이 지난 달 하마스 공격의 여파로 잇달아 총기를 구매하고 경비 부대에 자원하는 등 스스로를 무장하고 있다고 미국 CNN 방송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런 공포 분위기를 틈타 이스라엘의 극우 정치인들이 득세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요르단강 서안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지난 7일 이스라엘의 한 시장에서 총을 든 주민이 장을 보고 있다. UPI연합뉴스

지난 달 7일 하마스 공격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개인의 총기 구매 규제를 대폭 완화하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무장을 권고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부는 최근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시민 중 병역 훈련을 받았고 전과가 없으며 자격이 되는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은 기존의 대면 인터뷰 대신 전화 인터뷰를 거쳐 일주일 이내에 총기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조처에 따라 새롭게 총기 면허 발급 자격이 생긴 이스라엘 국민은 약 3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규제 완화 이후 이스라엘의 총기 가게와 사격장들은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국가안보부는 지난달 하마스의 공격 이래 접수된 신규 총기 면허 신청이 23만6천건이 넘는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년간의 총기 면허 신청 건수와 같은 수준이다.

또 총기 면허 자격 기준이 완화된 이래 매일 1천700건 정도의 총기 면허가 발급되고 있다. 과거 하루 평균 총기 면허 발급 건수는 지난해 11월에는 94건, 그 전년에는 42건이었다.

지난 7일 이스라엘의 한 시장에서 총을 든 주민이 길을 걷고 있다. UPI연합뉴스

개인 총기 구매와 함께 정부가 모집하는 자발적 무장 경비대에 참여하는 지원자 수도 늘어났다.

이스라엘 정부에 따르면 하마스 공격 이후 약 700명이 경비대에 자원했다.

극우 성향 정치인들은 경비대에게 총기를 나눠주고 시민 개개인들에게도 무장할 것으로 권고하면서 이 같은 무장 움직임에 앞장서고 있다.

극우 성향의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 장관은 전국 자원 경비대원들에게 1만대의 총을 지급하는 것을 목표로 최근 이스라엘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다.

벤-그비르 장관실은 "남쪽과 북쪽의 국경 인근 마을, 유다와 사마리아(서안의 성경 속 이름) 등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이) 섞여 있는 도시와 유대인 정착 지역들을 중심으로 전국의 경비 부대에 무기가 배포될 것"이라고 밝혔다.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 총들이 자신들을 겨냥할 것이라는 공포에 떨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팔레스타인 작가이자 정책 분석가 마리암 바르구티는 CNN에 벤-그비르 장관의 약속은 "팔레스타인 주민 살해에 청신호를 주는 것"이라며 "물론 그 이전부터 (팔레스타인 주민 살해는) 서안의 현실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달 이후 서안의 폭력 사태는 급증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에 따르면 전쟁 이후 서안에서 이스라엘 군인이나 유대인 정착민들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수는 최소 176명이다.

지난 10월 25일 한 이스라엘 시민이 총기 가게에서 총기를 구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대인 정착민들의 공격으로 형제와 사촌을 잃었다는 서안 주민 압델라짐 와디는 "우리를 보호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우리의 행동반경은 매우 제한적이며 집을 나설 때마다 총을 맞을 것이라는 끊임없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CNN은 지난주 카이사레아 지역에서 민간 경비대원들에게 총기를 나눠주는 행사에 참석한 벤-그비르 장관에게 그의 방침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향한 폭력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냐고 자사 기자가 질문하자 행사장에서 쫓겨났다고 전했다.

벤-그비르 장관 측은 이후 CNN에 "경비대를 만들고 무장시키는 것은 지난 달 발생한 것과 유사한 공격 발생 시 더 많은 이스라엘 가족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만약 벤-그비르 장관의 시각이 (하마스의) 학살 이전에 받아들여졌다면 오늘날의 모습은 훨씬 다르고 더 안전해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장 밖에서는 벤-그비르 장관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모여 그를 "파시스트"라고 부르며 "서안의 (폭력) 상황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CNN은 전했다.

가이 벤-포랫 이스라엘 벤구리온대 정치학과 교수는 CNN에 벤-그비르 장관이 "이 기회를 이용해 자신이 오랫동안 원했던 유대인들의 무장이라는 목표를 이루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총기 문화는 사람들이 불안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고, 사람들이 총을 사면서 모든 지역적인 다툼도 총격전으로 변할 수 있게 됐다"며 "이에 대한 해답은 유대인에게 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총을 뺏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