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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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우리] APEC서 인태경협 논의하려면

美 주도 ‘IPEF’ 최대 관심사
中 등 제외 12개국만 참여해
회원국에 실질적 유용성 의구심
美 투자확대 등 인센티브 기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2%, 무역의 48%,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지역협력체다. 한국은 1989년 창설 당시부터 회원국으로 활동해 왔다. 11월 15∼17일 제30차 에이펙 정상회의 개최국인 미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 중 7개국이 에이펙 회원국이다. 에이펙은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경제에 대한 관여를 설파해 온 핵심적인 플랫폼이다.

2023년 제30차 에이펙 정상회의는 “모두를 위한 회복력 있고 지속 가능한 미래 창조”라는 주제로 개최된다. 하지만 실상 이번 정상회의에서 경제 분야의 최대 관심사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일 것이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 당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이후 CPTPP로 명칭 변경)에서 탈퇴한 이후 미국은 지역무역협정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에이펙을 주요 경제외교의 무대로 삼아 왔다. 2021년 10월 처음으로 구상을 발표하였고, 2023년 에이펙 정상회의에서 IPEF 협상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최윤정 세종연구소 인도태평양연구센터장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성장과 번영을 논의하는 에이펙에서 인도태평양 경제협력을 논하는 것은 다소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IPEF에는 에이펙 회원국 중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는 곧 중국을 비롯한 9개국은 참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IPEF 회원국 중 인도와 피지는 에이펙 회원국도 아니다. 게다가 에이펙은 오랫동안 자체적으로 경제협력을 발전시켜 왔다. 회원국들은 1993년에 무역·투자 자유화를 위한 보고르 목표에 합의하였고, 21개 에이펙 회원국을 포괄하는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의 궁극적인 실현을 위한 협력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미국은 자국이 주도한 CPTPP, FTAAP를 모두 새로운 통상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제도로 간주하고, IPEF를 대안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유효성 측면에서 IPEF는 더욱 의구심을 낳고 있다. IPEF는 △무역 △공급망 △청정에너지, 탈탄소화 및 인프라(청정 경제) △세금 및 부패방지(공정 경제)의 네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주도하는 ‘무역’은 어느 정도 구속력을 갖고 있지만 디지털, 농업 등 세부 의제에서 참여국 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상무부가 주도하는 ‘공급망’ 협정은 금년 5월에 타결되었고, ‘청정 경제’, ‘공정 경제’도 에이펙 정상회의 계기에 타결안이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축은 구속력을 갖지 못하고 중요도도 떨어지는 편이다.

즉 이번 에이펙 정상회의에서는 IPEF가 CPTPP, FTAAP 및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5개 대화상대국(한국·일본·중국·호주·뉴질랜드)이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해 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미래 규범 형성의 의미가 큰 세 가지 축에서 초기부터 논의에 참여한다는 차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 미국은 에이펙 회원국과 다수의 양자 투자계약을 체결할 예정인데,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가 주요 수혜국이 될 전망이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과 에이펙 경제 간 상품 무역은 급증했지만 투자는 정체 상태이다. 그런데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미국과 3각협력을 구성하는 일본, 한국 등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가 크게 감소한 반면 말레이시아, 인도, 베트남에 대한 FDI는 기간 중 각각 12, 14, 40% 증가하여 감소분을 상쇄하고 있다.

10년 전 USTR의 TPP 수석 협상가였던 웬디 커틀러는 IPEF에 대해 “시장 접근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상대방에게 다른 혜택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책임이 더 커진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에이펙 회원국들은 수십 년간 자리 잡아 온 아시아태평양 개념에 비하여 인도태평양 개념은 어떤 유익을 줄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미 바이든 행정부는 IPEF를 통한 인도태평양 경제 체제의 유용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핵심 동맹국가로서 미국의 대외전략 수행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한국에 대한 투자 확대를 비롯한 실질적인 인센티브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최윤정 세종연구소 인도태평양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