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중앙을 차지한 미륵불이 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다. 그 아래 좌우에는 화려한 보관을 쓴 미륵보살이 연꽃 모양의 용화수(龍華樹) 가지를 들고 섰다. 주위로 제석, 범천, 십대제자(十大弟子), 십이신장(十二神將)이 자리를 잡았다.
바짝 다가가 찬찬히 들여다보면 십이신장은 뱀·토끼·쥐·호랑이·용·말·소·원숭이·닭·돼지·개·양의 얼굴이 그려진 모자를 쓰고 있다. 석가가 열반에 든 후 56억7000만년이 지난 뒤, 미륵보살이 용화수 아래에서 부처가 되어 그때까지 구제받지 못한 중생들을 위해 세 차례 설법회를 열고 모두 성불시킨다는 미륵하생경의 장면을 그린 변상도(경전 내용을 알기 쉽게 표현한 그림)다.
머리카락보다 가늘게 그은 섬세한 필치와 금 채색으로 고려시대 불화 예술의 경지를 보여 주는 걸작이다. 정식 작품명은 ‘미륵하생변상도(彌勒下生變相圖, 89×46.5㎝)’.
중국 서주 시대(BC 1046∼BC 771년)에 비가 내리기를 염원하는 내용을 기록한 청동 금문(金文) 반(盤)도 눈길을 끈다. 반은 왕실의 제사용 용기다. 금문은 청동기의 표면에 새겨 넣은 글씨를 뜻한다. 이 청동 반은 몸통 바깥쪽에 두 개의 ‘ㄷ’자 모양 손잡이와 두 개의 원형 고리가 붙어 있다. 네 개의 다리가 바깥쪽으로 벌어진 형태로 반을 받치고, 몸체 안팎에는 여러 길상무늬가 빼곡히 새겨져 있다.
안쪽 바닥과 바깥쪽 바닥에는 모두 311자의 명문이 있는데, 주나라 천자가 감로수를 왕에게 하사하고 왕이 굿을 하며 기우제를 지낸 이야기다. 상나라를 쳐서 주나라를 건국한 무왕과 곤륜산에서 서왕모를 만나 선도(仙桃)를 선물받았다는 목왕도 언급되어 있다.
대체로 청동기에는 특정 사건이나 사실이 금문으로 새겨져 있는데, 이 청동 반 역시 당시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금문사족사이도철문반(金文四足四耳饕餮紋盤, 13.0×23.1×16.0㎝)이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유산을 한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는 기획전 ‘한·중 문화유산의 만남’이 23일부터 내년 1월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57 수운회관 다보성갤러리 1, 2, 4층에서 열린다.
1층에는 고려시대 청자상감포도동자문표형주자(靑瓷象嵌葡萄童子紋瓢形酒子), 조선시대 백자철화운룡문호(白瓷鐵畵雲龍紋壺), 강화반닫이(江華櫃) 등 300여점의 한국 문화유산이 포진하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신석기시대의 채도 및 흑도, 훙산문화의 옥기, 한대의 도용(陶俑), 당대의 삼채도자, 송대의 정요(定窯) 백자, 원·명대의 청화백자, 청대의 채색자기 등 중국 문화유산 200여점을 만나게 된다. 청대 건륭어제 법랑채화조문봉퇴병(乾隆御制琺琅彩花鳥紋棒槌甁)과 중국의 대표적 근대작가 제백석(齊白石, 1863∼1957)이 만든 화첩·인장·여의장신구 등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4층에서는 원대 금련천막부 청화유금서수문상이반구병(金蓮川幕府 靑花鎏金瑞獸紋象耳盤口甁), 명대 선덕 청화운룡문관(宣德 靑花雲龍紋罐), 청대 집호형주사먹(執壺形朱砂墨) 등 온라인 경매에 출품될 작품 47점을 포함한 60여점의 희귀작이 선을 보인다.
신강옥태양신(新疆玉太陽神, 높이 20.5cm)은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신석기 훙산문화 유물이어서 유독 반갑다. 쪼그려 앉은 무릎에 두 손을 얹은 자세로 머리에 매미를 올려놓은 모습이다. 태양신과 매미를 함께 조각한 것으로, 두 개의 머리를 가진 태양신이 특징이다. 붉은 빛을 머금은 광택에 힘입어 생동감이 넘치고 신비로운 느낌을 발산한다. 중국 신강 지역에서는 품질 좋고 다양한 종류의 옥이 난다. 신강옥은 맑고 윤기가 나는 게 양의 기름 같다 하여 ‘양지옥(羊脂玉)’이라고도 불린다. 훙산문화의 옥제품에 주로 사용됐다.
훙산문화는 중국 네이멍구 츠펑시(赤峰市)의 훙산(紅山)을 중심으로 한 요서(遼西) 지역에 생성된 신석기 문화집합체를 말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세계 4대 문명을 앞지른다. 훙산문화는 화하족(華夏族)이 창조한 중원문화와는 결이 다르다. 여기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나 적석총(積石塚) 등의 유물이 중원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훙산문화를 창조한 주역은 화하족이 아니라 동이족(東夷族)이다. 따라서 훙산문화와 한민족의 상관성에 주목하게 된다. 우선 암각화가 상관성을 잘 말해 준다. 한반도의 경우 울산 천전리 등 20여곳에서 암각화가 발견됐다. 그 기원을 연해주 아무르강 유역이나 몽골 초원에서 찾으려 했으나, ‘한국형 암각화’의 특징인 기하학 무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훙산문화에서 닮은 암각화가 발견돼 한국 암각화의 계통이 해명될 것으로 기대된다.
5500년 전의 제사터나 묘터인 적석총도 좋은 예다. 널찍한 돌로 위를 덮은 석관이 여러 구 나왔는데, 고구려 장군총이나 경주 신라고분 적석총과 같은 형태다.
8000년 전, 옥을 세상에서 가장 먼저 썼다는 게 훙산문화의 자랑거리다. 싱룽와 유적에서 출토된 옥귀고리가 대표적 유물이다. 강원 고성군 문암리와 전남 여수 안도 패총에서도 형태뿐만 아니라, 제작 연대도 비슷한 옥귀고리가 발견됐다. 게다가 훙산 옥기에는 곰 형상이 투영된 유물이 많은데 이는 단군조선의 상징인 곰 토템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훙산문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수량이 방대한 이번 전시회는 설명을 들을수록 보는 재미가 배가되므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게 관람의 요령이다. 누리집(www.daboseong.com)을 통해 미리 학습하며 둘러보거나 경매에 참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