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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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갈등 해소’ 대화 진전 美·中… 정세 변화에 정교한 대처를

4시간여 대좌, 공통 과제만 합의
대만·수출통제 문제 여전히 이견
한·일·중, 한·중 회담 잘 활용해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어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가 열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진 회동은 공동성명은 없었지만 의미가 작지 않다. 1년여 만에 다시 이뤄진 주요 2개국(G2) 정상의 회동은 무려 4시간여 걸쳐 진행됐을 만큼 의제가 많았다. 첨단기술 분야의 수출통제 조치, 대만해협 긴장 같은 양국 갈등의 핵심 사안은 물론이고 인공지능(AI) 문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다양한 글로벌 현안이 다뤄졌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의 특징은 전략경쟁의 양국 관계 본질은 그대로 둔 채 충돌을 막고, 상호 이익이 되는 분야만 합의를 도출했다는 점이다. 중국이 미국의 ‘군대군 대화’ 재개 요구에 호응하고 나선 것부터 그렇다. 두 정상은 국방부 실무회담, 해상군사안보협의체 회의, 사령관급 전화 통화 등을 재개키로 합의했다. 우발적 충돌 위험을 양국이 제거했다는 점에서 큰 진전이다. 양국이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유통 차단에 합의한 것도 마약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러나 첨단기술,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큰 이견을 드러냈다. 시 주석이 첨단기술 문제와 관련해 “대국 간 경쟁은 시대착오적”이라며 미국의 첨단기술 수출통제 해제를 요구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중국에 절대로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며 단호히 거부했다.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어 G1 국가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시 주석은 “미국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구현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어떠한 일방적 현상변경도 반대한다”고 일축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변화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중이 신냉전 와중에도 대화로 방향을 튼 것은 우리에게 실용외교의 필요성을 증대시킨다. 높은 대중 수출의존도와 공급망, 대만 문제 등은 우리의 경제 및 안보와 직결된 중대 과제들이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전제돼야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에이펙 정상회의 기간 중 예고돼 있는 한·일·중 정상회담과 한·중 양자회담을 잘 활용해야 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국제정세에 대한 대응책은 정답이 있을 수가 없다. 국익을 극대화할 시나리오별 실용외교 방안을 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