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자궁 이식 수술 성공 사례가 나왔다. 임신을 원하나 선천적 기형 등 자궁에 문제가 있어 불임으로 고통받던 여성들에게는 희소식이 전해졌다.
17일 삼성서울병원 다학제 자궁이식팀이 대한이식학회에 제출한 발표 초록에 따르면, 이식팀은 지난 1월 마이어-로키탄스키-퀴스터-하우저(MRKH) 증후군인 한국인 여성 A씨(35)에게 44세 뇌사자의 자궁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MRKH 증후군은 선천적으로 자궁과 질이 없거나 발달하지 않는 질환으로, 여성 5000명 중 1명꼴로 발생한다. 난소 기능은 정상적이기 때문에 배란이 가능하고, 이론적으로 자궁을 이식받으면 임신과 출산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수술은 최초 어머니의 자궁을 이식하는 데 실패한 후 뇌사자의 자궁을 이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자궁 재이식 시도는 삼성서울병원의 이번 사례가 처음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난해 7월 친어머니의 자궁을 생체기증 받아 이식수술을 시도했다. 그러나 첫 수술에서는 이식한 자궁의 혈류가 원활하지 않아 수술 2주 만에 제거해야 했다. 이후 올해 1월 뇌사 기증자가 나타나 이뤄진 재수술에서 A씨는 이식 성공 후 29일 만에 생애 최초로 월경도 경험하게 됐다. 병원에 따르면 이는 자궁이 환자 몸에 안착했다는 신호다.
현재 A씨는 본인의 난자와 남편의 정자로 수정한 배아로 ‘시험관 아기’ 시술을 통한 임신을 시도 중이다. 병원은 자궁이식팀이 이식 수술에 앞서 미리 환자의 난소로부터 채취한 난자와 남편의 정자로 수정한 배아의 착상을 이식한 자궁에서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식외과·산부인과·성형외과·영상의학과·병리과·감염내과 의료진으로 구성된 삼성서울병원 다학제 자궁이식팀은 2020년 정식으로 발족해 임상연구를 시작했다. 자궁 이식은 고난도 수술로, 기증자로부터 자궁을 적출할 때 자궁과 연결된 혈관의 손상을 최소화해야 하고 수혜자의 난소와 생식선 등에 연결하는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국내 첫 사례인 만큼 자궁이식팀은 법적 자문과 보건복지부 검토를 받고, 기관생명윤리위원회 심사까지 모두 마친 뒤 신중히 접근했다. 임신을 결심 후 2021년 삼성서울병원의 문을 두드린 A씨의 강한 의지도 자궁이식팀의 연구 속도에 동력이 됐다.
화려한 성공 뒤에는 고난의 시간도 있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 체계에서 새로운 수술의 시도는 ‘임상 연구’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막대한 재원을 마련해야 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다행히 자궁이식을 통해 새 생명을 품으려는 환자의 간절한 바람과 의료의 영역을 확장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료진의 열정에 공감한 뜻있는 후원자들이 하나둘 기부에 나섰다.
개인과 재단 기부자를 비롯해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 제작진 등 여러 후원자가 연구비 기부에 참여했다. 슬의생 제작진의 기부는 극 중 채송화 교수의 롤모델이자 제작 자문을 맡았었던 자궁이식팀의 오수영 산부인과 교수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박재범 이식외과 교수는 ”국내 첫 자궁이식 사례이다 보니 모든 과정을 환자와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간다는 심정으로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며 “첫 실패의 과정은 참담했지만, 환자와 함께 극복해 환자가 그토록 바라는 아기를 맞이할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어 다행”이라고 전했다.
이유영 산부인과 교수는 “환자와 의료진뿐 아니라 연구에 아낌없이 지원해준 후원자들까지 많은 분이 도움을 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어려운 선택을 한 환자와 이를 응원한 많은 사람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