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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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자극' 의대 증원 수요 발표 무기한 연기…동력 저하 우려

정부가 의과대학 증원 수요조사 결과 발표일을 두 번 연기함에 따라 내년도 국회의원 총선거를 의식해 증원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의대 증원 수요조사 결과 발표를 추후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의대 증원 수요조사 결과에 수치가 부각됨에 따라 의료계의 반발을 더 자극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서울 시내의 한 의과대학.

정부는 지난 13일 오전 11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주재로 의대 정원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었다. 복지부는 하루 전인 지난 12일 오후 5시께 브리핑 시간과 장소를 공지했으나 4시간 뒤인 오후 9시께 브리핑을 연기했다.

 

연기 사유에 대해서는 "40개 대학의 2030년까지 의대증원 수요를 확인 및 정리하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신속히 정리해 이번주 내로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복지부는 목요일인 지난 16일 오후가 되도록 발표일을 정하지 못하다가 "아직 확인 및 정리되지 않았다"며 "추후 알려드리겠다"고 무기한 발표를 연기했다.

 

한 복지부 간부는 "추후 발표 계획이 확정된 게 없다"며 공개 여부에 대해서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미공개 가능성도 내비쳤다.

 

전국 40개 의대의 2025학년도·2030학년도 증원 수요조사 결과는 각 의대가 언론 등에 밝히며 어느 정도 알려진 상태다. 고2가 진학하는 2025학년도에는 2700명대, 2030학년도에는 3000명을 넘어 40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는 이 수요조사 결과를 통해 연차별 총정원 수요를 발표하고, 실제 증원 여력이 있는지 의학교육점검반을 통해 현장 실사를 한 후 내년 1월 초쯤 증원 규모를 확정할 방침이었으나 이제는 전체적인 일정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경기도의사회 악법저지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포퓰리즘 의대증원을 저지하기 위한 반차 휴진 투쟁을 하고 있다.

이처럼 복지부가 발표가 수요조사 결과를 두 차례 연기하는데에는 의료계의 항의를 받은 대통령실의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4일 연기 이유로 의사단체 눈치보기 아니냐는 질의를 받고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으나 두 번이나 연기한 상황이 되자 이 조차 어려워졌다.

 

경기도의사회 소속 의사 100여 명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한국의학교육협의회도 전날 입장문을 통해 "대학별 의대 증원 수요조사 결과로 의대 총정원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달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통해 의대 증원 의지를 밝혔다. 소관 부처인 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의협) 외 의료계 협회 및 수요자·환자 단체와의 릴레이 간담회를 통해 접촉을 확대하고 찬성 여론을 취합하는 등 의대 증원 논의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새로 의료현안협의체 협상단을 꾸린 의협은 지난 15일 첫 만남부터 "정부는 과학적,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의대 정원 정책을 준비하겠다고 확언했지만 지금 실시하고 있는 수요조사는 전혀 과학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면서 의대 증원 시 강경 투쟁까지 시사했다.

 

앞서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자 전공의 파업 등 의료계에서 의료 파업에 나선 바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료 현안 관련 병원계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에 복지부도 "의협은 국민 기대와 의료 현장 요구와 동떨어진 인식을 해왔다"면서 "지역과 필수의료를 살리라는 국민이 준엄한 명령에 답하길 바란다. 전향적인 변화와 협력의 모습을 보여주길 강력히 요청한다"며 단호한 태도로 맞섰다.

 

정치권을 비롯한 여론도 의대 증원에 우호적인 상황이다. 한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 3월 실시한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3분의 2에 해당하는 66.7%가 의사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대 정원 확대 동의 여부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의대 증원을 주장해온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수요조사 결과는 반드시 발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수치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 마치 대학들이 의대 정원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듯한 상황처럼 비춰지는 등 원래 취지와 본질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응급의료·필수의료 붕괴를 막는다는 본질을 살리는 취지에 따라 복지부가 어떤 원칙에 따라 정원을 배정할 지 명확히 세워서 함께 발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