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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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정·공공성·악정… 로마 흥망에 응축된 인류 경험

로마사를 움직이는 12가지 힘/모토무라 료지 지음/서수지 옮김/사람과나무사이/2만원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를 함락면서 ‘로마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600년 전의 일, 게다가 한반도에서 수천km 떨어진 곳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2000년대를 사는 지금에도 전 세계는 TV와 서적에서 꾸준히 ‘로마사의 흥망성쇠’를 다루며 로마사를 배운다. 왜일까.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로마사에는 인류의 경험이 응축되어 있다“고 했고, 독일 역사가 레오폴트 폰 랑케는 “로마 이전의 모든 역사는 로마로 흘러 들어갔고, 로마 이후의 역사는 로마로부터 흘러나왔다”라는 말로 그 중요성을 역설한다. 말하자면 로마사 자체는 유럽사와 유럽사에 영향을 받은 세계사의 거대한 수원(水源)인 셈이다.

모토무라 료지 지음/서수지 옮김/사람과나무사이/2만원

로마사 일본 최고의 권위자인 모토무라 료지 교수는 이 로마사의 의미를 12가지 코드로 정리했다. 공화정, 회복탄력성, 공공성, 대립과 경쟁, 영웅과 황제, 후계 구도, 선정과 악정, 5현제, 혼돈, 군인황제, 유일신교, 멸망 등의 키워드는 2206년의 장대한 로마사를 넘어 현재에도 통용되는 키워드다.

로마의 중심축에는 ‘공화정’이 있었다. 로마의 공화정 성립은 로마 군주의 아들이 귀족의 아내를 겁탈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을 대응하는 과정에서 공화정이 자리 잡았고, 이후에도 로마인은 독재에 대한 높은 경계심을 가졌다. 여기에 규율을 위반한 친아들의 목을 베고, 연대 책임을 강조하는 등 ‘공적 개념’, ‘공공의식’은 경쟁국 페르시아, 그리스와 달리 로마가 제국으로 번창하는 동력이 됐다.

삼니움족이나 카르타고와 전쟁에서 보듯 로마인은 전쟁에서 쓰라린 패배를 당하고도 절치부심하며 이를 되갚아주는 저력을 지녔다. 이를 근간으로 로마에 등장한 영웅과 황제는 번영을 가져왔다. 카이사르라는 걸출한 영웅이 영토를 비약적으로 넓히고, 이어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가 민생을 안정시키면서 ‘대제국’이 완성됐다. 이후 네르바 황제를 시작으로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등 이른바 ‘5현제 시대’를 지나며 로마제국은 100년에 가까운 태평성대를 누렸다.

이런 제국이 멸망한 데는 ‘악정’이 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뒤를 이은 아들 콤모두스의 기행과 악행으로 몰락의 그림자가 드리웠고, 칼리굴라, 네로, 도미티아누스, 군인 황제시대의 최악 황제들까지 줄줄이 등장하며 되돌리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에 관한 주장은 210여개나 된다. 저자는 12번째 키워드 멸망의 부제를 ‘관용을 잃어버린 로마, 자기 심장에 비수를 꽂다’로 달며 저자의 관점을 명확히 적었다. 동로마와 서로마의 분리 이후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이 몰락하기까지는 1000년이 더 걸렸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듯이 하루아침에 망하지도 않았다. 이 모든 교훈을 안고 있는 것이 로마사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