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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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거북 코에 박힌 빨대… 자연 파괴로 누가 돈 버는가

플라스틱 생산량 70년새 200배 증가
年 1000만∼2000만t 쓰레기 바다로

재활용, 단 9%… 소비 죄의식 더는 계략
다수 ‘생분해성’ 제품서도 독성 발견돼
“생산 줄이는 게 유일한 해결책” 강조

플라스틱 테러범 : 우리를 독살하는 플라스틱 비즈니스의 모든 것/도르테 무아장/최린 옮김/열린책들/2만5000원

 

2015년 미국의 한 대학원생이 코스타리카 해변에서 바다거북의 코에 박힌 빨대를 빼내는 영상을 공개했다. 바다에 버려진 빨대를 삼킨 그 거북은 멸종위기 종인 올리브바다거북(Lepidochelys olivacea)이었다. 영상은 큰 파장을 일으켜 플라스틱 빨대 퇴출 운동이 확산했다. 소비자들은 종이 빨대와 개인 텀블러를 쓰고 페트병 라벨을 떼어내 분리 배출하면서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었다.

바다에 버려진 빨대를 삼켰다가 빨대가 코에 박힌 멸종위기 올리브바다거북. 유튜브 캡처

신간 ‘플라스틱 테러범’은 이것이 글로벌 플라스틱 비즈니스를 주도하는 기업들의 기만적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기후·환경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 도로테 무아장은 엑손모빌, 듀폰, 바스크, 코카콜라, 유니레버 등 글로벌 플라스틱 비즈니스를 주도하는 기업들을 ‘플라스틱 테러범’으로 명명하고, 이들이 어떻게 환경파괴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피하고 그 위기를 기회로 뒤바꿔 놓았는지를 고발한다.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 200만톤에서 2020년 4억톤으로 200배 이상 늘었으며, 이런 성장세라면 2050년에는 10억톤을 넘을 전망이다. 이 중 4분의 3은 쓰레기가 되고 해마다 1000만∼2000만톤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도르테 무아장/최린 옮김/열린책들/2만5000원

문제는 이 플라스틱 쓰레기 중 단 9%만 재활용됐고 12%는 소각됐으며 나머지는 매립되거나 자연 속에 버려졌다는 점이다. 저자는 “산업계가 지난 40년간 ‘재활용’이라는 교활한 계략을 내놓아 플라스틱 생산량 증가에 대한 관심을 돌렸다. 소비자에겐 죄의식을 덜고 소비에만 집중하도록 장려했다”고 꼬집는다.

플라스틱은 수명 주기 각 단계인 추출부터 정제, 운송, 작업자 제조, 소비자 사용, 소각, 또는 자연 속으로 해체될 때까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한다. 플라스틱에는 발암성 물질뿐 아니라 소량으로도 인체 기능을 방해할 수 있는 내분비 교란 물질 등의 첨가제가 들어 있다.

독일 연구팀이 2019년 8월 요구르트병과 샤워 타월, 샴푸통 등 일상생활 용품 34개를 실험한 결과 그중 4분의 3 제품에서 독성이 발견됐다. 가장 놀라운 것은 실험한 8개 폴리머 중 사탕수수나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PLA가 독성이 가장 강한 물질 중 하나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는 바이오 성분, 생분해성 물질 등 마치 최선의 대안인 것처럼 팔리고 있는 물질들이 기존의 플라스틱보다 반드시 더 안전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경기도 용인시 재활용센터에 쌓여 있는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 연합뉴스

실제로 자연환경 속에서 저절로 빠르게 분해된다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매우 높은 온도, 즉 소각로에서나 분해가 가능하다. 옥수수 전분이나 사탕수수 등으로 만든 바이오 플라스틱 역시 저절로 분해되지 않는다. 따라서 석유에서 추출한 기존 비닐봉지를 바이오 성분 비질봉지로 대체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유엔도 오히려 식량 작물 생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기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소비자는 결국 재활용되지도, 생분해되지도 않는 봉지를 부지런히 분리배출장으로 보내고 있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재사용 가능한 플라스틱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플라스틱 물통은 폴리카보네이트, 즉 비스페놀A로 만들어졌다. 2010년 프랑스에서 젖병 포장재에 처음 등장한 이후 ‘BPA Free’라는 표시는 건강하고 무해한 제품임을 보장하는 것처럼 기업의 브랜드 마케팅에 이용됐다.

국제플라스틱협약 제3차 회의를 나흘 앞둔 지난 9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환경회의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관계자들이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촉구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스페놀A는 아세톤, 폴리카보네이트를 만드는 데 쓰이는 모노머(Monomer·단량체)로, 투명하고 충격에 강해 안경, 소형 가전제품, 의료 기기뿐 아니라 물병과 젖병 같은 음식물용부터 스포츠 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에 쓰인다.

그러나 비스페놀A는 내분비 교란 물질로, 10년간 4000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비스페놀A 노출이 사망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 대상 연구에서도 당뇨, 비만, 성조숙증, 유방암, 전립선암 등의 발병을 조장하고 뇌 발달을 방해한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1997년 유럽에서 비스페놀A가 젖병 속 우유로 유출된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유럽연합은 2011년 6월 비스페놀A가 함유된 젖병을 금지시킨 데 이어 2020년 모든 감열지, 특히 영수증에 쓰지 못하도록 했다.

업계는 대응책으로 비스페놀A를 비스페놀S로 대체했는데, 사실 둘은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또 폴리카보네이드로 된 젖병 대신 폴리프로필렌을 썼는데, 이 젖병 역시 우유 1리터당 최대 1600만개의 미세 플라스틱 입자를 방출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결국 플라스틱 업체가 대안을 늘리면서 소비자들에게 혼란만 야기할 뿐 환경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다.

160개 유럽 환경단체 연맹인 유럽환경국의 화학물질 책임자인 타티아나 산토스는 “플라스틱 대부분은 재활용해서는 안 되고 독성 폐기물로 분류돼야 한다. 진정한 순환경제를 원한다면 플라스틱은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며 “설계부터가 유해한 물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욕조가 넘치고 있다면 급선무는 넘친 물을 닦아내는 것이 아니라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 즉 플라스틱의 근본적인 생산을 줄이는 것이 유일한 진짜 해결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테플론보다는 스테인리스 프라이팬, 검은 플라스틱보다는 나무로 된 국자, 타파웨어보다는 유리 용기, 화장품이나 세제도 공장에서 대량 제조된 제품보다는 수제품을 택하는 것, 적어도 플라스틱을 재사용하는 것보다 건강한 방법으로 지구를 살리는 길이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