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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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모든 문제에 답은 하나일까

학창시절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이었다. 비록 ‘문송’(문과라 죄송)해서 기자가 됐지만, 20대 중반까지 수학을 손에 놓은 적은 없었다. 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숫자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학 중 특히 방정식을 좋아했다. 복잡한 방정식을 다양한 방법으로 분석해 명확한 답을 도출하는 과정이 좋았다. 어려운 방정식을 마주하면 며칠 매달려 고민을 했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심리적인 고통도, 문제를 풀어내는 시간도 늘어났다. 빈 종이에 연필을 끄적이면서 깨달았던 사실은 고차방정식을 풀어내려면 다양한 해법이 필요하며, 때로는 답이 여러 개일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김범수 산업부 기자

세상사를 방정식으로 나타내면 어떨까. ‘세상만사(世上萬事)’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세상사 방정식은 문자 그대로 변수만 1만개 이상의 고차방정식이 될 것이다.

오늘날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이슈마다 답을 쉽게 내뱉는 일이 많아진 듯하다. 범죄사건이 발생하면 “사형이 답이다”라는 반응은 특히 많다. 사형을 다시 집행한다 해도 범죄율과의 관련성, 국제사회 반응, 오판의 가능성 등 따져봐야 할 게 많은데도 말이다.

범죄사건은 그나마 낫다. 한쪽을 손대면 다른 쪽에서 터지는 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너무나 쉽게 “원전(또는 친환경)이 답이다”, “공매도 폐지(또는 유지)가 답이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극단적으로 “중국과 무역을 전면 중단하는 게 답”이라는 무책임한 말도 나온다. 정말이지 ‘정답 원하는 사회’라고 해도 될 정도다.

사회 문제에 대한 해답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수많은 이론과 시나리오, 집단지성과 노력이 동반돼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수학 난제처럼 당장 답을 도출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

‘답은 OOO이다’라고 쉽게 말하는 심리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답답한 마음이기도 하고, 어려운 문제를 간결하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의 답을 빠르게 내놓는 것은 다분히 폭력적이다. 다양한 의견과 토론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복잡한 사안을 쉽게 뭉뚱그리는 반지성주의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쉽게 판단하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감정의 배설에만 집중할 뿐이다.

물론 14세기 영국의 논리학자 오컴은 “필요 없이 복잡하게 만들지 말 것”이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이 개념은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오컴의 면도날’이다. 하지만 오컴의 면도날은 쓸모없는 비약이나 전제를 잘라내면서 원리를 분석하는 것이지, 답을 쉽게 내리라는 뜻은 아니었다.

사회와 국가는 결국 조직과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입법·사법·행정부가 존재하고 국제기구가 있는 것은 어려운 문제를 최소한의 리스크로 합리적이면서 공리주의에 기반한 결정을 내리기 위함이다. 이 과정이 때때로 효율적이지 못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쉽게 답을 내리는 풍조를 경계해야 무고한 피해자와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김범수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