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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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링크플레이션 ‘꼼수’에 시민 분노…정부 대응 효과 있을까

“마트에서 그램당 가격까지 꼼꼼히 살펴봐요.” 

 

가정 주부인 김모(43)씨에게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바로 가격표 밑에 붙어 있는 그램당 가격을 살펴보는 것이다. 최근 제품 가격을 올리는 대신 용량을 줄이는 꼼수인상,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에 대한 소식을 접한 후 불안감이 들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뜩이나 물가가 너무 올라 생활비가 늘었는데, 뒤통수까지 맞기 싫으니 별수 없지 않나”라며 멋쩍게 웃었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천일염, 소금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일부 기업들의 슈링크플레이션이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기업들은 원재료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이익률을 보전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고, 정부는 이를 ‘정직하지 못한’ 경영 방식이라며 조치를 예고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오히려 ‘시장 가격 왜곡’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우려를 전했다.              

 

17일 통계청의 '10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를 기록했다. 정부의 당초 연말 물가 목표였던 2%대를 한참 벗어난 수치다. 올해 2%대 물가 상승률을 기록한 때는 6월(2.7%)과 7월(2.3%) 단 두 달 뿐이다. 

 

이날 IMF는 올해 물가 전망을 기존보다 더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IMF의 ‘2023 한국 연례협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종전보다 0.2%포인트 상향된 3.6%다. 내년도 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종전 2.3%에서 0.1%포인트 상향된 2.4%로 내다봤다.

 

이처럼 물가가 정부의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이유는 크게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간 무력충돌로 불안해진 중동 정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국제유가 및 각종 원재료 가격의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가 상승 속 이익률을 보전하기 위해 기업들이 택하고 있는 전략이 바로 슈링크플레이션이다. 소비자의 저항이 거센 제품의 가격 대신 용량을 줄임으로써 원가 상승분을 상쇄하면서 소비자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일석이조’의 효과다.

 

하지만 이를 알아챈 소비자들은 슈링크플레이션을 일종의 ‘눈속임’으로 인식하며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최근 한 업체의 핫도그가 패키지와 가격이 그대로인 채 용량이 5개에서 4개로 줄어든 것이 화제가 되며 슈링크플레이션 이슈에 불이 붙고 있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최근 슈링크플레이션을 여러 제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식품업계 현황을 살펴보면, CJ제일제당은 이달 초부터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간편식품 ‘숯불향 바베큐바’의 중량을 280g에서 230g으로 줄였다. 가격은 봉지당 5600원으로 같다. 하지만 g당 가격은 20원에서 24.3원으로 21.5% 올랐다. 동원에프앤비는 지난달부터 ‘양반김’ 중량을 봉지당 5g에서 4.5g으로 줄였지만, 가격은 700원으로 유지하고 있다.

 

해태제과는 올해 초 고향만두와 고향김치만두 가격을 10% 인상한 데 이어 지난 7월에는 고향만두 용량을 한 봉지에 415g에서 378g으로, 고향김치만두는 450g에서 378g으로 줄였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뉴스1

정부는 기업의 슈링크플레이션을 ‘정직하지 않은’ 영업방식으로 규정하며 적극적 대응을 예고한 상황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업들의 ‘꼼수인상’은 정직한 영업방식이 아니며,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며 “현재 공정위 등 관계기관과 함께 내용물 변경 시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는 조치에 대해 검토 중”이라며 정부의 대응을 예고했다. 

 

이후 기재부는 올해 11월 말까지 한국소비자원을 중심으로 주요 생필품 실태조사 및 신고센터 신설 등 구체적은 슈링크플레이션 대응책을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 자칫 물가 불안을 더욱 조장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석병훈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물가를 억지로 누르면 튀어 오르게 돼 있다”면서 “과거 이명박 정부의 가격 개입 사례의 평가를 보면 개입 후 소비자물가보다 오히려 1.6배 더 올랐다”고 지적했다.

 

석 교수는 또 “단기간에야 정부의 개입으로 물가가 잡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가격 통제가 풀리면 기업들이 더 큰 폭의 인상에 나설 것”이라며 “한국은행이 잘못된 소비자물가지수에 기반해 통화정책을 결정할 위험성도 커진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채명준 기자 MIJustic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