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 등·초본 하나 제대로 못 떼는 것은 처음이네요. 디지털 강국 맞나요?”
17일 오후 5시10분쯤 대전 둔산1동행정복지센터를 찾은 법무사 A씨는 고개를 저으며 발길을 돌렸다. 서류를 한 더미 들고 온 그는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발급 받지 못해 헛걸음 했다”며 불평했다.
이날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사용하는 공무원 전용 행정전산망 ‘새올’이 사용자 인증 문제로 장애를 겪은 데 이어 정부24까지 서비스가 전면 중단되면서 전국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디지털정부’를 홍보하기 위해 해외출장 중이었지만 행정당국은 ‘디지털 강국’이 무색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
◆민원서류 발급 올스톱… 금융권 피해도
전국 행정복지센터에서는 이날 주민등록등·초본, 인감증명서, 본인서명사실확인서, 전입 세대 열람 등을 발급받지 못한 국민들의 피해가 이어졌다. 일부 국민들은 “정부가 피해를 책임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낮 12시쯤 서울의 한 주민센터를 찾은 직장인 김모(35)씨는 “은행에서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안내받고 주민센터를 찾았는데 서류발급이 불가능했다”며 “당장 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서류발급이 막히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특히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어서 부동산 매매 계약을 해야 하는 등 각종 민원 서류 발급에 마음이 급한 사람들이 많았다.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불만을 토로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 누리꾼은 “버팀목(전세자금) 대출 때문에 오늘 내로 전입신고를 해야 하는데 정부24 서버 다운으로 아무것도 못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정전산망 마비로 인해 전입신고도 중단됐다. 이에 따라 사용자를 검증해 시스템 접속을 인증해 주는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서 법원 인터넷등기소의 확정일자 접수 등도 차질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세 세입자의 경우 확정일자를 받은 다음날부터 대항력이 생기는데, 대항력이 생기기 전에 근저당권이 설정되면 우선순위가 밀려나게 된다. 부동산 거래현장에서도 민원서류 발급 중단으로 일부 혼선이 있었다. 모든 공공업무의 기본이 되는 신분 확인 절차가 중단되면서 기업 피해도 잇따랐다. 금융회사의 신규 예금상품 온라인 가입 등도 모두 멈췄다.
◆행안부 “국민 불이익 없도록 조치”
행안부는 이날 오후 5시40쯤 정부서비스 장애로 국민들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납부와 신고기한을 복구 시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확정일자 등과 같이 접수와 즉시 처리를 요하는 민원은 민원실에서 먼저 수기로 접수를 받고 이후 오늘자로 소급해 처리한다는 임시방편 대책도 내놨다. 행안부는 “전산망 장애로 발생한 불편사항에 대해서는 사안에 따라 관계기관과 협조해 불편, 불이익이 없도록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서울 일부 자치구에선 구민들의 헛걸음을 막기 위해 단체 문자메시지를 발송하기도 했다. 동주민센터에서 대형폐기물 신고, 가족관계증명서, 임대차계약신고, 여권 신청, 단순 상담 등 업무는 볼 수 있지만, 무인민원발급기를 사용하거나 주민등록·복지 전산망을 이용한 전입신고, 등·초본, 인감, 수급자증명서 발급 등은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원인·복구 불명확… ‘전자정부’ 오점
새올 시스템은 2015년 3월 약 2시간 동안 장애가 발생해 민원인 불편을 야기한 바 있다. 정부의 각종 전산망을 연계하는 디렉토리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지 않아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린 게 원인이었다. 그러나 중앙행정기관, 공공기관,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모아 민원을 열람·신청·발급하도록 한 정부의 대표 포털인 정부24가 8시간 가까이 먹통이 된 건 매우 이례적 사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행안부는 전산망 먹통의 원인과 해법, 복구 시점 등 어떤 것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진행한 서버 보안 패치 업데이트 작업에서 오류가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오류 때문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국민의 입장에서 생활밀착도가 가장 높은 디지털정부 서비스인 인터넷 민원서비스의 취약성이 드러나며 정책 신뢰도 하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가 자랑해온 ‘전자정부 수출 강국’의 체면에 오점을 남기게 됐다. 행안부가 발간한 ‘2021년도 전자정부 수출실적 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61개 국가에서 209건, 5억762만 달러의 전자정부 수출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